에디(폴 뉴먼)는 젊은 내기당구꾼이다. 눈썰미와 손놀림이 얼마나 빠르고 정확한지, 사람들은 그를 ‘패스트(Fast) 에디’라고 부른다.
에디는 당대 최고의 허슬러인 미네소타 팻(재키 글리슨)에게 도전해 파죽지세로 그를 누른다. 벼랑 끝에 몰린 미네소타 팻은 매니저 버트(조지 스코트)에게 구원을 청한다. 버트는 에디의 게임을 냉철하게 관찰하더니 미네소타 팻에게 덤덤하게 말한다. “걱정할 거 없어. 저 친구는 타고난 패배자야.”
나와 출생년도가 같은 영화 ‘허슬러’의 한 장면이다. 자신만만한 에디는 버트의 논평에 코웃음을 친다. 그러나 결국 버트가 옳았다. 에디는 밤을 꼬박 새운 경기끝에 본전까지 몽땅 잃는다.
메피스토펠레스를 연상시키는 버트는 훗날 에디를 자기 수하에 넣은뒤 그 이유를 가르쳐준다. “재능만으로는 부족해. 캐릭터가 필요해. 그런데 네게는 그것이 모자라.”
도대체 버트가 말하는 캐릭터는 뭘까? 어렴풋이 감은 잡히는데 딱히 표현하기 어렵다. 그것은 어쩌면 삶에 대한 무자비한 태도를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또 도박이 삶만큼이나 허망한 놀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꿰뚫어 보면서 게임 그 자체에 몰두할 줄 알고 냉철한 승부근성을 끝까지 관철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에디가 버트와 손을 잡고 이 캐릭터라는 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가 ‘허슬러’다. 이 작품이 도박세계를 다룬 영화중 으뜸으로 꼽히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심리전과 권모술수, 무시무시한 자기 절제를 배워가면서 내기당구계의 최고 강자로 떠오른다.
그러나 에디에게도 아킬레스건이 있다. 다리를 저는 애인 사라(파이퍼 로리)의 존재다. 버트는 에디에게서 사라를 떼어놓기 위해 그녀를 범하고, 사라는 이 모든 현실이 너무도 역겨워 자살을 선택한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에디는 버트의 목을 조르다 제 머리를 벽에 쾅쾅 부딪히며 짐승처럼 통곡한다. 에디라는 캐릭터가 완성되는 화룡점정의 순간이다.
영화의 끝은 다시 미네소타 팻과의 게임이다. 지옥을 통과해 온 에디는 전보다 더욱 확신에 찬 솜씨로 포켓볼을 치며 버트에게 저주를 씹어뱉는데 그 대사가 일품이다. “내가 질 것 같애? 12번구. 네가 그랬지? 재능만으론 충분치 않고 캐릭터가 필요하다고. 4번구. 내겐 이제 확실한 캐릭터가 있어. 난 그걸 루이빌의 한 호텔에서 주웠지.”
이런 친구와 도박을 해서 이길 가능성은 없다. 지금은 싸이더스 부사장이 된 차승재가 과거 그랬다. 녀석은 포커 약속을 하면 아예 전화를 불통상태로 만든 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마인드 콘트롤에 들어간다. 이게 캐릭터다.
헐렁한 나는 그와 붙으면 백전백패였다. 한 번은 밤을 꼬박 새운 끝에 가진 돈을 몽땅 차승재에게 털리고 10만원을 얻어간 적이 있다. 녀석은 꿔준 거라고 주장했지만 나는 갚지 않았다. 몇 년후 그가 제작자로 독립해 우노필름을 차리고 ‘비트’의 시나리오를 내게 맡겼을 때였다. 계약금을 받고 보니 10만원이 떼인 상태였다. 그게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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