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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현장]윤락가에 장애인 복지시설 재건축추진 논란

입력 | 2001-03-09 09:35:00

장애인회관과 5m 떨어진 윤락업소 유리창에장애인마크가 선명하게 반사되고 있다


"나도 연애(매춘)해서 먹고 살지만 이런데다 장애인시설을 짓겠다는 게 말이 됩니까?"

경기도 평택시 평택동 속칭 삼리의 한 윤락업소에서 4년째 일하고 있는 신소영(가명)씨는 9일 "장애인시설이 윤락가 한 가운데 지어진다는게 어이가 없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씨는 "장애인들이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우리나 장애인들이나 사람들이 싫어하는 건 마찬가지 아니냐"면서 "허긴 대부분의 주민들이 자기 마을에 장애인시설이 생기는 것에 반대하다 보니 이런 곳에 들어서는 것 아니겠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평택시가 윤락가 중심부에 위치한 장애인회관을 재건축하려는데 대해 장애인단체들이 각각 현격한 입장차이를 보이는 가운데 시민단체까지 가세해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평택시, "윤락가라도 별 문제 없다"▼

재건축될 조감도 모습

시는 윤락가 내에 위치한 장애인회관을 헐고 7억여원의 예산을 들여 대지 65평, 지하1층·지상2층 규모의 장애인종합복지관을 건립키로 했다.

새 종합복지관은 지하 1층에 장애인 전용 목욕탕, 지상 1층에 사무실 및 종합민원상담실, 지상 2층에 회의실 등이 들어서도록 설계돼 있다.

시청 사회과 정영만 과장은 "지체장애인협회가 전용 목욕탕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2001년 예산에 7억원 가량을 반영했다"면서 "목욕탕만이 아니라 71년도에 지어진 건물에 대해 재건축을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추진과정을 설명했다.

정과장은 또 "실제로 다른 동네 안에 생기게 되면 주민들이 반대하기 때문에 그런 시민 정서를 고려했다"며 "윤락가라고 해서 행정기관까지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시는 안중면 대반리에 정신지체어린이시설을 건립할 계획이었으나, 현재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진행이 중단된 상태다.

사회과 장호상씨는 부지선정과정에 대해 "4곳의 후보지 가운데 장애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데다 인근 평택역 역세권 개발계획 등을 고려해 최적지로 결정했다"면서 "윤락가라는 것이 큰 문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농아인·시각장애인협회, "윤락가에서 벗어나고 싶다"▼

장애인회관 맞은편에 증축 중인 윤락업소

농아인협회 등 장애인단체들은 지난 95년 6월 현재의 윤락가 중심에 위치한 장애인회관에 입주했다.

농아인협회 남윤아(35) 총무는 "당시 시에서는 윤락업소 단속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곧 없어질 것이라고 했지만 6개월 정도 지난 후 업소들은 내부 시설을 고치는 등 더 활성화 됐다"고 말했다.

현재 150여개의 윤락업소가 집중돼 있는 평택동 장애인회관 인근에는 '19세 미만 청소년 24시간 출입통제'라는 입간판이 설치돼 있다.

이들 업소들은 오후 7시경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영업을 하고 있으며 장애인회관과 가장 가까운 업소는 5M정도 떨어진 정면에 위치해 있다.

남총무는 "장애인단체들은 장애인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청소년과 일반인 자원봉사자들의 출입이 잦은 시민공동체"라며 "많은 청소년에게 수화교육을 하고 있는데 청소년 출입제한구역이기 때문에 별도로 장소를 빌려서 진행하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지체장애인협회, "우리는 찬성"▼

장애인회관에는 시각장애인협회와 농아인협회, 무공수훈자회 그리고 지체장애인협회가 입주해 있다.

지체장애인협회(지장협) 박선희 총무과장은 "이번에 건립되는 복지관은 지체장애인을 위한 특수 목욕탕으로서의 의미가 크다"면서 "윤락가라는 이유로 반대를 하는데 마땅한 다른 장소를 찾기도 힘들며, 장애인들에게는 역과 시장 등이 가깝고 교통이 편리한 그 곳이 가장 좋다"고 설명했다.

24시간 청소년들의 출입을 금지한 레드존(윤락업소)
푯말. 바로 옆에 장애인회관이 있다

현재 시가 추산하고 있는 장애인은 모두 9000여명으로 이 가운데 지체장애인은 약 6000명이다. 시에 등록된 장애인단체 회원은 지장협이 900여명, 시각장애인협회 140여명, 농아인협회 350여명 등으로 지장협의 규모가 가장 크다.

이런 이유로 시의 장애인 정책에 있어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지장협의 한 관계자는 지난 2월 시민단체가 주최한 간담회에 참석해 "윤락가를 나쁘게만 보지마라. 자원봉사자가 의지만 있으면 장소가 무슨 상관이냐"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단체, "평택시 복지정책의 전반적인 문제"▼

평택참여자치시민연대(평택참여연대)와 시각장애인협회 등 18개 시민·장애인단체는 오는 15일 '올바른 장애인복지회관 건립촉구를 위한 모임 결성대회'를 갖고 평택시에 건립계획 수정을 요구할 방침이다

평택참여연대 이은우 사무국장은 "이미 시의회에 청원서를 제출해 심의중에 있으며, 윤락가 한 가운데 장애인시설을 설치하려는 시의 복지정책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이국장은 "시의 복지정책이 회원수가 가장 많은 지체장애인협회 위주로 수립되는 경향이 있고 예산배정에도 문제가 있다"면서 "공청회 등을 개최해 시민과 장애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국장은 "시가 장애인시설에 대해 무차별적인 혐오시설로 인식하는 주민들에 대한 설득작업을 충분히 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님비현상 탓으로 돌린다"며 "추진과정에서도 민주적이고 투명한 절차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장애인회관 재건축을 두고 논란이 가열되자 평택시는 단기적으로 시민·장애인단체와 함께 다시 부지선정 작업을 벌일 예정이며,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계획자체를 유보하고 장기적으로 장애인종합복지관 건립사업을 수립할 계획이다.

최건일/동아닷컴 기자 gaegoo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