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3월 첫째 일요일인 4일 오후 2시, 파리의 한 중학교 도서관. 약 50명의 민중소설애호가협회 회원들이 모였다. 이 곳은 옛 민중소설도서관 자리. 이 협회 가입자는 280명으로 교수, 교사, 도서관 사서, 민중소설 수집가 등 직업은 다양하지만 민중소설을 향한 정열은 똑같았다.
1984년 창단된 이 모임은 회비로 운영되며 계간지 ‘르 로캉볼’을 발간한다. 이날 모임에는 2003년의 계간지에 실릴 주제들을 결정했는데, 글쓰는 이나 만드는 이 모두 무보수로 활동한다.
프랑스에는 이같은 작가애호가협회가 250개가 넘는다. 올초 출판된 이 책은, 2001년 프랑스에 존재하는 협회들을 총망라해 가입비, 주소, 전화번호, 활동까지 상세한 정보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파리 니케즈서점 주인. 지난 1월 각종 협회의 잡지들을 서점 2층에 전시하기도 했다.
작가들은 대부분 프랑스인이지만 디킨스, 바이런, 톨스토이 등 외국 작가도 15명이나 끼여 있다. 그 중 약 180개의 협회는 실로 팬클럽을 방불케 한다.
자신의 시를 노래한 죠르즈 브라센스의 팬이 가장 많아 1000명. 2위는 ‘텡텡’이란 만화로 유명한 벨기에 만화가 헤르제(800명), 3위는 19세기 소설가 졸라(750명).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애호가가 가장 적어 10명 뿐이다. 아라공, 발자크, 프루스트, 라신느 등 18명의 프랑스 거성들은 하나가 아닌 여러 협회가 조직되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세기별로도 다양해 몽테뉴, 라블레, 토마스 모어 등 16세기 작가에서부터 현재 생존해 있는 작가도 4명. 250여개 협회 중 1970년 이후에 창설된 것이 210여개에 이르는 점으로 보아 근래들어 작가에 대한 관심이 증가 추세임을 알 수 있다. 당시에는 유명했으나 현재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작가들을 위해 여러 협회에 가입한 열성파 독자도 있다.
국립도서관의 한 사서는 1915년 공쿠르 상을 수상했으나 단 세편의 소설과 몇 편의 단편만을 남기고 1차 세계대전 중 33세로 요절한 루이 페르고와, 출판계에서 소외된 노동자와 농부들의 작품을 출간한 작가이자 출판인인 앙리 풀라이 협회에 함께 가입했다. 낡은 잡지와 신문을 뒤적이며 그들에 관한 글을 모으고, 흩어진 서신들을 찾아 작가의 명성을 회복해주는 일이 그의 여가 선용 방법이다.
프랑스에서는 작가이름이 붙은 거리와 집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이런 애호가들의 공이 크다. 그들은 시청의 오랜 민원서류까지 조회해, 작가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행적을 조사해 유적으로 보존토록 한다.
프랑스 문학의 저력을 저울질해 볼 수 있는 이 안내서를 보며, 우리는 한 나라의 위대한 문학은 문학에 대한 작가와 국민의 열정과 존중에서 비롯됨을 새삼 느끼게 된다. 원제 Guide Nicaise des associations d’Amis d’Auteurs 2001.
조혜영(프랑스 국립종교연구대학원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