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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의 대중문화째려보기]디바 생각 룰라 생각

입력 | 2001-03-10 12:16:00


샤크라가 돌아왔습니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그 무거운 날개를 등에 매고 새침떼기 천사 흉내를 낼 때는 가여웠는데, 등푸른 생선처럼 컴백무대에서 빠른 리듬에 맞춰 신나게 흔들어대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노래들은 이번에도 역시 잡탕밥이군요. 아프리카와 인도와 또 제가 알지 못하는 그 모든 나라들의 리듬이 뒤섞여 들려옵니다. 샵도 돌아왔네요. 봄 내음을 풍기는 의상에 손을 많이 사용하는 앙증맞은 춤도 경쾌하고 두 여성 보컬의 노래 실력도 많이 늘었습니다.

샤크라나 샵을 보고 있으면, 자꾸 룰라가 떠오릅니다. 샵의 남성 맴버가 내지르는 랩은 이상민을 빼어 닮았고 샤크라와 샵의 여성 맴버들의 창법과 춤은 김지현과 채리나를 연상시킵니다. 두 그룹의 성공은 프로듀싱의 귀재 이상민에 의해 철저하게 준비되고 계산된 결과이겠지요. 신인을 발굴하고 키우는 이상민의 실력은 이수만이나 박진영, 양현석과 견주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채리나가 탈퇴하기 전의 디바도 마찬가지였지요. 채리나의 카리스마가 워낙 강했던 탓에 비키와 지니의 역할은 그저 큰 키와 미끈한 몸매를 보여주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룰라에서 김지현이 솔로로 나간 이후 보컬을 몽땅 담당했던 채리나는 마음껏 소리를 내지르고 현란한 랩과 춤을 보여주었지만, 비키와 지니는 샵의 두 남성 맴버처럼 있는 듯 없는 듯 하는 존재였지요.

그러나 채리나가 탈퇴한 이후의 디바는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여자 DJ. DOC 라는 건 지나친 상찬이지만 여성그룹들 중에서 디바 만큼 자기 식대로 나가고 있는 그룹은 없는 듯합니다. 핑클은 여전히 공주들이고 SES는 일본 노래로 새로움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베이비복스나 샤크라는 아직 정해진 컨셉에만 충실한 반면, '노티 디바'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입니다.

채리나 없는 디바는 고기 없는 햄버거라고 여긴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채리나의 카리스마가 사라진 자리에 비키와 지니의 랩이 스며들고 거기에 민경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섞이니, 전혀 다른 조화를 이루는군요. '업&다운'의 정신없음과 '이 겨울에'의 잔잔함에 이어 '크레이지'를 듣고 있노라면 드디어 그들이 어떤 성숙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디바 역시 이상민의 그늘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요. DJ.DOC가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들을 통해 이 땅에서 힙합 가수로 사는 자의 고독이나 자의식을 표출한 것처럼, 과연 디바가 그런 쾌거를 이룰 수 있을까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디바의 다음 앨범에서는 랩이나 나레이션을 통해서만이라도 세 맴버의 진솔한 자기 고백을 듣고 싶습니다. 또한 비키와 지니가 그토록 힙합에 심취해 있다니, 그녀들이 만든 곡도 한두 곡 정도 들어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샤크라나 샵이나 디바를 한참 동안 구경하다 보면 문득 룰라가 궁금해집니다. '날개잃은 천사'로 날개를 달았다가 '천상유애'로 하늘에서 추락한 이후, 그리고 다시 컴백하여 옛 명성을 이어간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이상민은 프로듀서로 동분서주할 테고 김지현은 포르노그라피로 불리 만큼 노골적인 영화를 찍고 있고 채리나는 프로듀싱을 공부하고 있고 고영욱도 이래저래 노래 공부와 춤 연습에 바쁘다는 소문은 간간이 들리는 걸 보니 그들이 과연 새로운 음반을 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듭니다.

이렇게 더딘 것은 최고의 음악을 만들기 위함일까요? 아니면 룰라의 음악 자체가 어떤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일까요? 나이 어린 샤크라나 샵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지만, 저는 이 그룹들을 만들고 훈련시킨 룰라의 새롭고 고차원적인 변신을 구경하고 싶습니다. 이상민의 그 활화산같은 랩과 함께.

소설가 김탁환(건양대 교수) tagtag@kytis.ko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