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 노래 싫어. 귀를 돌로 문지르는 것 같애.”
기자와 함께 길을 가던 친구가 근처에서 들려오는 선율에 손을 휘저으며 외쳤다.
기자가 대답했다. “나는, 캐러멜이 귀에 엉겨붙는 것 같은데.” 판이한 취향을 가진 두 사람의 뜻이 모처럼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비난의 표적이 된 노래는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였다. 가사를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만큼 ‘아, 그 노래!’하며 무릎을 칠 분이 많을 것이다.
샬럿 처치, 레슬리 가렛 등 ‘블록버스터형’ 성악가들이 2∼3년 전부터 자기 앨범에 유행처럼 끼워넣기 시작하더니, 한 인기 TV드라마 속에서도 5분에 한번씩은 이 노래가 들려오고 있다.
그러나 드라마 속 노래의 전주(前奏)로 들려오는 현악기의 대합주는 이 노래가 만들어지던 시대에는 없었다. 쩌렁쩌렁 울려대는 ‘벨 칸토’ 창법 역시 없었다. 이 노래를 쓴 카치니는 1545년경 태어났다. ‘음악의 아버지’라는 바흐보다 무려 140년전 출생했다. ‘오케스트라’ 조차 없었을 때니 아마 이 노래는 원래 작은 오르간이나 류트 반주에 그다지 크지 않은 목소리로 불려졌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400년만에 이 노래로 ‘뜬’ 카치니란 작곡가가 바로 ‘오페라’의 발명가라는 사실이다.
16세기 말 피렌체에 ‘카메라타’라는, 부호와 예술가들의 모임이 있었다. 어느날 이 클럽은 그리스 고전예술의 맥을 이은 새로운 예술형식을 창안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작곡가 카치니와 페리가 앞장을 섰다. 신화를 소재로 한 연극과 음악을 합쳐 무대에 올린다는, 사뭇 웅대한 프로젝트였다.
이것이 오페라의 시작이다. 대사를 노래처럼 읊어대는 ‘레치타티보’(朗唱)역시 오페라의 부속품으로 카치니가 ‘발명’했다.
‘나는 오페라에 관심없어’라고 말할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오늘날 막대한 청중 동원력을 갖고 있는 뮤지컬이 오페라의 ‘후손’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카치니가 없었더라도 누군가 다른 형태의 노래극을 만들었지 않겠는가’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뮤지컬이 갖고 있는 전개방식, 인물에 대한 음악적 성격부여, 노래와 무대를 일치시키는 비법 등은 오페라의 400년 역사로부터 고스란히 배운 것이다.
그러니 편곡된 ‘아베 마리아’를 혐오하는 사람도 이 노래의 원 작곡자에게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만 하다. ‘음악극’의 원형을 창안했다는 점 때문에라도 카치니는 충분히 기억할만한 인물이니까.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