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믿지 마오, 내 사랑, 내가 슬픔에 빠져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최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소프라노 갈리나 고르차코바의 콘서트는 러시아 로망스의 진수를 청중들의 가슴 가득히 전해주는 감동적인 무대였다. 라흐마니노프의 ‘날 믿지 마오 내 사랑’에서 고르차코바는 금방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표정으로 프레이즈(악절·樂節)마다 슬픈 사랑 이야기를 절절히 담아냈다.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예프게니 오네긴’ 중의 ‘편지의 장면’에서는 폭발적인 음량과 완벽한 테크닉으로 무대를 압도했다. 후반부, 칠레아와 푸치니의 오페라 아리아에서 그가 이탈리아 오페라도 무리없이 소화하는 가수로 도약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쉽게 깨어지는 사랑보다는, 힘들 때 서로 보듬어줄 수 있는 러시아 여인의 사랑 노래를 불렀어요.” 연주회 뒤 만난 고르차코바는 이번 콘서트의 성격을 이렇게 설명했다.
평상복 차림의 고르차코바는 ‘스타’라기 보다는 소박하고 진한 인간미를 풍겼다. “99년 마린스키 극장에서 독립했던 건 일한 만큼 보수가 뒤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그는 마린스키 (키로프) 극장의 예술감독인 지휘자 게르기예프가 가수들의 처우에 신경써야 한다는 불만도 표시했다.
“목소리가 나오는 한 노래할거예요. 한국 음악인들이 연주보다는 가르치는 것에 더 비중을 두는 것이 안타까와요.” 그는 레슨에 매달리는 우리 음악인들의 ‘프로의식 부재’를 따끔하게 꼬집었다.
그에게 한국을 대표하는 바리톤 최현수의 우리 가곡 음반을 선물했더니, 그는 기회가 되면 한국 가곡도 공부해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최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방한해 한러관계도 새 전기를 맞이하는 듯 하다. 그러나 양 국민 사이를 한발 더 가깝게 하는 것은 문화교류를 통한 정서적인 만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고르차코바와 헤어지면서 문득 들었다.
유혁준(음악 칼럼니스트·KBS 1FM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