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한국경제의 화두는 수출이었다. 수출은 고도성장의 견인차였고 정부나 기업 모두의 최대 관심사였다. 수출 종사자들은 외화가득이 곧 애국이라는 자긍심에 차있었고 정부도 수출업체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도 당시의 수출 역군들은 자신들이 이 나라 건설에 일익을 담당했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연구개발에 지속적 투자를▼
대통령이 전쟁터의 지휘관처럼 수출독려를 위한 회의를 주재하고, 수출의 탑이나 훈장수여로 수출업계의 사기를 진작하는 모습도 언론을 통해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수출유공자가 독립유공자나 요즈음의 민주유공자보다 훨씬 더 대접받던 시절이었다. 고인이 된 독재자 박정희씨가 생존해 있는 민주투사 출신 대통령들보다 더 추앙받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도 수출드라이브를 통해 보여준 그의 강한 경제 리더쉽 때문이 아닐까. 그러던 수출이 80년대 후반에 와서 슬그머니 관심밖으로 사라졌다. 수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도 없어졌고 기업들도 수출보다는 내수시장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위정자들이 심어준 선진국 환상 때문이었을까, 먹고 살만해졌다는 착각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흥청망청해진 분위기는 마침내 외환위기를 불러왔고 우리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우리는 지난 3년 동안 구조조정에 매달려왔다. 그러나 구조조정이 경제정책의 종착역일 수는 없다. 부채를 줄이고 사람을 줄인다고 경제가 절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은 수출로 외화를 벌어와야 경제에 숨통이 트인다. 지금도 우리 경제의 버팀목은 수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외환위기 극복의 공도 수출에 돌아가야 한다. 지난해에도 수출은 전체 경제성장의 58.7%를 담당해 여전히 성장의 원동력임을 과시했다. 외환위기로 수출산업기반이 부실해지고 정부지원이 줄어드는 가운데서도 수출은 묵묵히 우리 경제를 지켜온 것이다.
흘러간 세월과 함께 수출환경도 변했다. 과거 우리의 경쟁력 원천이었던 저임금은 더 이상 우리의 강점이 아니며 주력 품목도 경공업 제품에서 반도체, 자동차, 조선, 철강 등으로 바뀌었다. 우리의 주력품목은 그 숫자도 제한돼 있지만 해외경기나 유가, 환율같은 외부환경의 변화에 너무나 민감하다. 우리의 경쟁력은 개발도상국들로부터 맹렬한 추격을 당하고 있으며 선진국에는 뒤쳐져 있는 불안한 상태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실종된 수출의지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한번 수출로 경제회생의 활로를 열어야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은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우리 수출은 양에서 질로 바뀌어야 한다. 주력품목을 고부가가치화하고 다변화해 환경변화에 강한 체질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고부가가치화는 연구개발(R&D)과 마케팅으로 가능하다. 전자가 장기전략이라면 후자는 단기전략이라 할 수 있다. 세계의 제품이 격돌하는 수출시장에서 기술력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기업은 외환위기 와중에 그나마도 뒤쳐져있던 연구개발 투자를 줄였다. 연구개발 투자는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마케팅은 우리 수출산업의 치명적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비가격경쟁력을 보완할 수 있는 전략수단이다. 마케팅을 통해서 우리 상품은 브랜드 자산가치를 키워나갈 수 있으며 그것은 바로 고부가가치화의 지름길이다. 낙후된 국가이미지도 국가 마케팅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중소기업과 벤처의 해외진출에 있어서도 가장 아쉬운 것은 마케팅 능력이다.
▼경제위기 탈출구는 수출▼
마케팅능력을 스스로 배양할 수 없는 기업들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 맞지도 않는 거시 경제지표 예측이나 정부 입장 대변에 열을 올리는 연구기관은 많아도 기업의 수출활동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 마케팅 연구기관은 전무한 실정이다. 수출 2000억 달러를 목표로 하는 나라라면 그런 기관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강력하고 효율적인 지원을 위해서 정부조직 내에 수출 마케팅활동 지원전담부서를 두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수출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며 강력한 리더쉽은 그런 곳에 발휘돼야 한다. 수출만이 우리 경제 회생의 돌파구이기 때문이다.
예종석(한양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