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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대근/재야 정신

입력 | 2001-03-12 18:46:00


우리 현대사에서 재야(在野)란 말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사전적으로는 공직에 나아가지 않고 민간에 있거나, 제도적 정치 조직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정치세력을 뜻하는 말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이 보다 훨씬 능동적인 의미로 쓰였다. 한마디로 군사 독재정권에 맞선 저항세력을 일컫는 말이었다. 때로는 양심세력으로 통했고 때로는 무조건 체제를 부정하는 과격세력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재야운동은 박정희(朴正熙)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됐다는게 일반적인 견해다. 그 후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재야세력이 조직화하면서 민청련 등이 결성됐고 이는 결국 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경실련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가 호응을 얻고 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재야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다. 특히 현 정부 들어 대표적인 재야인사들이 제도권으로 편입되면서 '이제 재야의 시대는 끝났다 '는 말까지 나왔다.

▷그런데 최근 변호사 단체의 신임 회장들이 잇따라 재야정신의 회복을 들고 나와 눈길을 끈다. 박재승(朴在承)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협회가 발행하는 월간 '시민과 변호사' 3월호 권두시론에서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재야정신의 속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야정신의 핵심은 권력에의 항거정신" 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으로 선출된 정재헌(鄭在憲)변호사도 "법치주의가 문란해지면 법에 근거해 국정 비판에 나설 것 "이라고 다짐했다.

▷변호사법 제1조는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변호사의 사명을 규정하고 있다. 특정 직업의 사명을 규정한 법률은 변호사법이 유일하다. 그만큼 변호사의 사회적 책무가 막중하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고 이병린(李丙璘)변호사는 67년 펴낸 '법속에서 인간속에서' 를 통해 "변호사는 중립적 야인이어야 한다. 중립이란 정치적 의도가 없음을 말하고, 야인이란 대중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고 말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법조 출신 41명이 16대 국회에 진출했고 이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법사위는 돈세탁방지법 처리를 마냥 미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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