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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사람들]의문사규명위 조사관 김현일씨의 25시

입력 | 2001-03-13 18:06:00


"그 사람 신원은 파악된 거야?"

오전 9시 30분. 조사관 김현일씨는 며칠 전 신원파악을 의뢰해놓은 참고인 하나를 떠올린다. 대답은 또 "노"였다. 헌병대 수사기록에 의하면 참고인의 14년 전 나이는 22세. 그 사이에 사망하거나 이민을 가지 않았다면 어딘가 살아 있을 텐데…

열에 다섯은 이런 식이었다. 참고인의 명단을 확인하고도 소재파악이 되지 않는다. 동료 조사관들은 IMF 이후 부도를 낸 사람이 많은 탓이라고 투덜거린다. 현일씨에게는 그래도 나머지 다섯이 있다. 출석요구서를 보내놓은 나머지 참고인들만 다 나와준다면 수사는 보다 수월해질 것이다.

김현일씨 책상 앞에 다시 사건일지가 던져진다. 박희도. 당시 방위병. 출근 30분만에 분신자살. 직업 한의사…. 매일 들여다봐도 의문투성이인 14년 전의 죽음. 유가족들은 한의사였던 박씨가 분신 자살을 시도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김씨는 당시 헌병대 기록을 다시 뒤져본다. 의문을 해결할 증거가 없다. 게다가 14년 전의 일을 정확히 기억해 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정적인 증거는 사건 한두 시간 전후의 진술에서 나온다. 그런데 참고인들은 아침의 일인지, 저녁의 일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3과는 군(軍) 의문사 담당이다. 경찰이나 일반 실종사건을 다루는 다른 과에 비하면 관심이 적은 편이다. 이번 사건만해도 당시에는 그저 그런 군(軍) 자살 사건으로 처리됐을 것이다. 그러나 유가족들의 생각은 다르다. 김씨도 그것을 안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고 14년간이나 풀지 못한 의혹을 마음속에 둔 사람들이다. 유가족들 때문에라도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

오늘도 5개의 조사실이 꽉 찼다. 다른 조사실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김씨를 압박한다.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또다른 사건. 총기자살로 판명된 사건이지만 사망자의 아버지는 구타에 의한 사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0년이 지난 일이라 사건현장에서 단서를 얻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로지 참고인들의 진술에만 의존한다. 참고인은 또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진술하고 있다. 김씨는 이전 참고인들의 진술들을 모아 조각조각을 맞춰본다. 그래도 빈틈이 생긴다. 결정적인 증거가 나올 때까지는 진술을 모으고 분석해보는 수밖에 없다.





왜 이 일을 하게 됐을까? 김씨도 잘 알 수 없다. 대학 시절 관계했던 한 단체 때문에 97년에는 잠시 감옥밥을 먹기도 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이었다. 한때 서울 홍제동 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자신이 이렇게 조사하는 입장에 설 줄은 김씨도 몰랐다. 출소 후 김씨는 장애인 관련단체에서 일하다가 진상규명위원회에 민간 조사관으로 들어갔다.

김씨에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누군가는 이런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유린은 밝혀져야 한다. 이 일이 역사에 본보기를 남겨야 한다.

오후 6시. 사무실에서의 조사는 일단 끝났다. 오전, 오후 하루 2차례의 조사로 김씨의 입술이 갈라져 있다. 그렇다고 쉴 수는 없다.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김씨는 다시 내일 조사를 위한 자료를 검토한다.

아무리 민간 조사관이라도 조사는 객관적이어야 한다. 십수년 전에 자식을 보내고 하루도 기억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는 부모님들의 말에 김씨는 역사에 대한 불끈한 치욕을 느낀다.

김씨는 이 일에 감사한다. 조사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유족들에게는 평생의 한을 풀어줄 마지막 기회다. 유족들을 만나고 조사진행을 설명해줄 때 김씨는 보람을 느낀다. 기존의 수사관행을 깨고 한국의 인권에 기여한다는 자부심도 있다.

서울시 광화문 한구석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그때 그들의 죽음을 좇는 조사실의 불은 늦게까지 꺼지지 않는다.

안병률/ 동아닷컴기자mok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