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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남쪽에서 '반쪽' 찾은 서른네살 탈북자 이문철씨

입력 | 2001-03-13 18:50:00


탈북자 이문철(李文哲·34·포항제철 연수원 근무)씨는 무뚝뚝하다.

“예” “아니오” 단답형 대답을 하다 조금 긴 말이 나올까 기대해 보면 “글쎄요” “별로인데요”다. 다음달 7일 결혼하는 약혼녀 강미영(姜美英·29·미용사)씨도 기자에게 이렇게 전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도 안 해서 하루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대답이 ‘미안하다’예요.”

사랑한다는 말을 못해서 미안하다는 것이다. 이씨가 글로 써서 보내준 수기가 없었다면 그를 인터뷰하는 데 꽤 애를 먹었을 것이다.

살기 위해 목숨을 걸어본 적이 있어서일까. 이씨는 속이 깊어 보였다. 웬만한 일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을 것 같은 찬찬함과 여유, 그리고 일상에 대한 감사와 겸손함이 엿보였다.

그는 평양에서 태어났다. 7세때인 74년 주민조사에서 아버지 가족 대부분이 남한에 사는 것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이씨 가족의 고통이 시작됐다. 백두산 부근 양강도로 추방돼 영하 20∼25도까지 내려가는 겨울을 지내며 배급도 못 받아 강냉이죽으로 연명했다.

이씨의 아버지는 89년 중국상인을 통해 미국에 친어머니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은 후 벼르고 벼르다 마침내 97년, 중국 장백으로 날아온 어머니와 만난 것을 계기로 탈북을 단행한다. 이씨 부모, 형 누나 동생, 갓 태어난 조카 2명 등 총 9명의 가족이 압록강을 맨몸으로 건넜다.

남한생활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대기업에 계약직으로 채용된 큰 형이 곧 실직했고 보험설계사인 누나도 실적이 좋지 못하다. 현재 이씨 혼자 생계를 떠맡고 있는 형편이다.

실의에 빠져 있는 그에게 올초 인생 최대의 선물이 주어졌다. 바로 사랑하는 여자가 생긴 것. 친척 소개로 만난 강씨의 착한 심성에 반해 만난 지 두달 만에 청혼했다. 역시 어려운 집안 맏딸로 갖은 고생을 하며 얼굴에 큰 화상까지 입어 사회생활이 힘들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누구보다도 착하게 살고 있는 그녀를 통해 인생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됐다고 한다.

보통 여자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외모에 상처를 입고도 저토록 밝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니….

며칠전 이씨는 강씨에게 시 한구절을 적어 보냈다. ‘너를 위해 나 살거니 내 모든 것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신혼 보금자리도 장만하지 못해 당분간 이씨가 묵는 연수원 숙소에 신혼방을 차릴 계획이다. 안쓰러워 하는 기자에게 강씨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이제 하나둘 모을 일만 남았다”며 이씨 손을 꼭 잡는다. 이씨가 모처럼 긴 말을 던진다. “반지라도 하나 해줘야 하는데….”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