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지금까지 삶은 하얀 까마귀와 같은 삶이었다/백로가 되고 싶어 온 몸에 밀가루칠을 한 하얀 까마귀…/그러나 그 까마귀는 비가 오는 날이면 두려움에 떠는 것이다/자, 이제 우리 맹서하자꾸나/양과 같이 순한 삶을 살기로.”
조회건수 130만건을 돌파한 류승완 감독의 30분짜리 인터넷 영화 ‘다찌마와 리’의 주인공 임원희(31). 8 대 2의 가르마, 꼭 끼는 양복, 입만 열였다 하면 도덕 교과서 같은 말만 해대던 영화속 다찌마와 리와 달리 그는 해맑은 눈빛을 지닌 수줍은 청년이었다.
기자가 영화속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넘버 3’ 이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이 영화속 ‘닭살 대사’를 줄줄 욀 때였다. 그는 심지어 상대배우가 다찌마와 리를 향해 내뱉는 대사, “대답이 없는 것을 보니 무척 고독을 즐기나 보군”까지 전체 대본을 외고 있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 지금은 햄버거 CF에까지 나오면서 꽤 유명한 얼굴이 됐지만 몇달전까지만 해도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는 무명배우에 불과했다. 장진 감독의 ‘간첩 리철진’의 4인조 택시강도 중 한명으로 출연한 것이 그마나 비중있는 배역이었다. ‘반칙왕’에선 엉뚱한 곳에서 자꾸 등장해 폭소를 유발하는 술꾼역을 맡았지만 편집과정에서 전부 잘려나갔다.
그런 그가 전격 주연으로 발탁된 것은 류승완 감독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 악질 형사로 무료 출연해준 인연 때문.
“처음엔 도올 김용옥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을 등장시키려 했대요. 그러다 저를 떠올리곤 무릎을 쳤다더군요.”
류승완 감독은 그에게서 만화 ‘짱구는 못말려’의 주인공 짱구의 20년후 모습을 읽어냈고 그런 이미지에 안 어울리게 굵직한 저음의 목소리에 주목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때 아버지가 사준 386컴퓨터를 아직까지 고이 모시고 있는 그에게 ‘네티즌 스타’란 말은 영 얼떨떨하기만 하다. 가장 존경하는 국내 배우가 신구이고, 마론 브란도와 장 가뱅을 가장 좋아한다는 그는 천상 아날로그 정서를 지닌 배우다.
“주름이 연기를 한다는 말이 있죠. 아무런 대사없이 얼굴만 쓱 비쳐도 수많은 대사를 전할 수 있는 연기자가 되는 것이 평생 꿈입니다.”
‘반짝 스타’로 끝나지 않기 위해 그는 요즘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실력 키우기’에 한창이다. 그의 다음 배역은 장진 감독의 ‘킬러들의 수다’에서 매주 킬러의 고해를 들어주느라 고생하는 신부. 류승완 감독의 차기작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여성들이 펼치는 액션에 쩔쩔 매는 형사역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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