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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개그맨도 때론 슬프다

입력 | 2001-03-14 15:20:00


아내(이영애)가 죽어간다. 죽음을 앞둔 아내는 비밀스럽게 삶을 정리하지만 정작 개그맨인 남편(이정재)은 아내의 비밀을 알게 됐다는 것도, 아내를 위해 옛 친구를 찾아 헤매고 있다는 것도 차마 말하지 못한다. 속 깊은 배려라고 하기엔 너무 지나친 설정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행동에 영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다. 아내는 남을 웃기는 게 직업인 남편이 슬픔을 안고 사는 게 싫었고 남편은 그런 아내의 배려를 진심으로 인정해주고 싶었다.

은 슬플 때도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말투로 남을 웃겨야 하는 개그맨에 대해 애정 어린 시선을 던지는 영화다. 각종 인터뷰에서 개그맨이 털어놓았던 고충의 대부분이 "무대 위에선 웃고 무대 밖에선 울어야 할 때"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은 요사이 쏟아진 어떤 멜로영화보다 리얼리티에 기댄 측면이 많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에 대해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영화"라고 단언하진 못할 것이다. 은 고무풍선에 바람 채우듯 흔히 있을 법한 상황에 극단적인 과장을 덧붙였기 때문이다.

개그맨에게 가장 잔인한 상황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보며 개그를 할 때가 아닐지. 이건 누가 뭐라고 해도 개그맨에겐 최악 중에 최악의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개그 콘테스트에서 연승을 거듭할수록 아내의 병이 점점 더 악화되어 가는 의 상황은 충분히 눈물겹다. 동전의 양면같은 슬픔과 기쁨의 한 끝 차이가 이처럼 극명하게 대비되는 순간도 드물다.

은 이 얄궂은 삶의 아이러니에 추억 한 보따리를 양념처럼 보탠다. 'TV는 사랑을 싣고'나 '아이 러브 스쿨'에서 영감을 얻었을 옛 친구 찾아 삼 만리가 바로 그것. 물론 옛 친구를 찾아 나선 사람은 친구를 보고 싶어하는 주인공이 아니라 추억의 전령사들이다.

'TV는 사랑을 싣고'가 그렇듯 이 영화 역시 추억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두 명의 전령사를 마련한다. 무명 개그맨인 용기를 등쳐먹으려다 뒷덜미가 잡힌 사기꾼 콤비. 이들은 용기의 협박 섞인 부탁을 받고 그의 아내 정연의 옛 추억 찾기에 동참한다.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정연의 옛 친구를 찾아나선 이들은 이 영화의 웃음을 책임지는 아주 중요한 캐릭터다.

의 연출을 맡은 오기환 감독은 시종일관 슬플 수밖에 없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추억의 전령사들에게 많은 임무를 맡긴다. 이들은 이 영화에서 개그맨인 용기보다 훨씬 오버하며 훨씬 웃긴다. 이건 최루성 멜로영화의 틀에서 한 걸음 물러나 보려는 감독의 안간힘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영화의 상업성에 가장 큰 위험요소가 되기도 했다. 슬픔에 감정을 푹 적실 즈음 튀어나오는 이들의 코미디는 감정을 한 곳에 집중시키는 걸 방해한다.

생각해보면 개그맨이 등장하는 영화는 이외에도 많았다. 이명세 감독의 ,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 밀로스 포먼 감독의 등. 이 영화들은 웃음과 눈물의 페이소스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과 비슷하지만 중요한 지점에선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이나 의 그들은 억지로 코미디의 대타를 두지 않아도 충분했지만 의 용기는 그렇지 못했다.

슬픈 개그맨 용기를 연기한 이정재는 안타깝게도 이 영화에서 멋진 개그맨이 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인상이다. 그는 남을 웃기고 있는 상황에서조차 슬픈 표정을 지어야 하기에 관객의 진심을 얻지 못했다. 이에 비해 죽음을 앞둔 아내 정연을 연기한 이영애는 참 편한 역할을 맡은 셈이다. 웃음과 눈물의 한 끝 차이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는 이영애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무난한 연기를 보여준다.

외도하지 않고 "관객을 울리겠다"는 일념으로 매진한 이 영화는 상업영화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폼잡지 않고 철저히 울려보겠다는 자세로 일관한 이 영화에 대해 트집을 잡는 건 참 쓸 데 없는 짓이 아닐지. 그러나 이렇게 작정하고 울리는 영화를 보면 또 어쩔 수 없이 '내 눈물'에 대한 얄팍한 고집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감독 오기환/주연 이정재 이영애 권해효 이무현/등급 12세 이용가/개봉일 3월24일/홈페이지주소 http://www.sun-mool.co.kr)

황희연benot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