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시대에는 언제나 ‘괴담‘이 유행이다. 가상의 무서운 이야기를 통해 현재의 불안과 갈등을 잠시나마 씻고자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 속에는 ‘성기 괴담’이라고 할 만한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옛날 아프리카나 중동지역에서는 전리품으로 적군의 페니스를 모으는 것이 하나의 관습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은 적의 귀를 잘라가는 것이 관습이었다고 하는데,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성기를 자르는 것보다는 차라리 귀를 자르는 게 더 나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이집트군이 기원전 13세기에 리비아를 침공했을 당시 이들이 노획한 페니스의 양은 무려 1만3230개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고대 도시 테베의 한 돌조각상에는 승전한 군사들이 노획한 1000개의 페니스를 왕에게 바치는 내용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이토록 무시무시한 풍습이 이집트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원전 6세기 예루살렘을 침공한 바빌론의 한 왕은 랍비들이 버리고 간 유태인 죄수들의 페니스를 수천개 잘라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뿐 아니다. 1857년 5월 북인도 미라도에서 일어난 ‘세보이의 반란’에 휘말린 영국 군인들은 늘 ‘성기 괴담‘에 시달렸다. 일단 포로가 되면 성기를 모두 잘렸으며 여성들은 음부에 총을 맞고 죽어갔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 영국-이집트 연합군이 동아프리카의 수단을 공격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포로가 된 영국 병사들은 양손이 묶인 채 남근에 벌꿀이 발려져 육식을 즐기는 벌레들에 의해 흔적도 없이 성기가 사라지는 끔찍한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또 감옥 천장에 매달린 백인 병사들은 음식물에 최음제를 섞어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먹는 바람에 광적인 성적 흥분에 쌓인 노예 여인들에 의해 정액이 완전히 고갈될 정도로 섹스의 고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1년이 채 되지 않아 그 병사들은 자유의 몸이 됐지만 그들은 모두 발목이 휘청거려 제대로 걷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는 백발 노인이 되어 그 감옥에서 기어나왔다는 기록도 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성기를 쾌락의 도구라고 생각하지 이토록 무시무시한 엽기적 행위의 대상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요즘에야 이런 희한한 풍습과 전쟁 관습을 가진 나라가 없지만 어쨌든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성기 괴담’임에는 틀림없다.
요즘같이 불안한 시대, 혹 현대판 ‘성기 괴담‘이 등장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