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의 한 남성이 상담을 해왔다. “도대체 일주일에 몇 번을 해야 적당하냐”는 원초적 질문이었다. 다소 격앙된 목소리의 그 남성은 소위 ‘횟수’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당한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횟수’의 문제는 대다수 남성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런 궁금증은 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옛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횟수’에 관한 수많은 정의를 내리곤 했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입법가인 솔론은 당시의 학교(아카데미)에서 ‘부부의 의무를 거르지 않기 위해서는 한 달에 세 번의 성행위를 해야 한다’는 다소 ‘관대한’(?) 정의를 내렸다. 종교개혁가인 마르틴 루터의 경우 ‘주 2회가 여성에 대한 의무적인 성행위의 횟수며, 1년에 104회 정도라면 나에게나 아내에게도 결코 해가 될 수 없다’는 규제를 내리기도 했다. 물론 여기에는 그가 이 결정을 내릴 때의 나이가 40대란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객관적이라기보다는 다소 주관적인 결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이러한 횟수에 대한 기준은 보다 엄격해졌다. 당시 격언 중에는 ‘하루 1회는 병자의 식이요법에 불과한 것이다. 2회는 신사의 예의이며, 3회는 숙녀의 의무, 4회는 아내의 권리’라는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 물론 우스개가 약간 섞인 유행어였기 때문에 그 시대 사람들이 이를 불문율로 여겼다고는 볼 수 없다. 만약 지금 이런 유행어가 있다면 버럭 화를 낼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몽테뉴는 그의 소설 ‘수상록’을 통해 우회적으로 하루의 최다 성교 횟수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도 했다. 이 책에서 성교 횟수를 가지고 싸움을 한 부부에 대한 판결을 맡은 알라곤 공주는 ‘정상 결혼에서는 절제와 신중함을 규범으로 하며, 이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정상적이고 필요한 한계점으로서 성교의 횟수를 하루에 여섯 번으로 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옛 사람들의 정력을 따라잡기엔 현대인들에게 각종 성적 방해물이 너무도 많은 듯싶다. 그러나 섹스의 횟수는 정해진 것이 없다.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은 개인의 건강상태와 섹스 상대의 욕구다. 스스로 건강하고 배우자도 원한다면 하루에 열 번을 한들 어떠랴. 하지만 이 두 가지 조건이 갖춰지지 못한 상태에서 ‘횟수’에만 집착해 무리하게 강행하는 섹스는 자신을 피곤하게 만들고 상대 또한 쉽게 질리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