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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경택칼럼]임동원 국정원장은?

입력 | 2001-03-14 18:22:00


이번 한미(韓美)정상회담이 성공이냐 실패냐를 놓고 여야(與野)는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냉정하게 보면 성공이랄 수는 없다. 솔직히 말하면 실패라는 게 옳다. 하지만 지금 성패를 두고 설전을 계속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선 급한 것은 실패의 원인을 정밀 분석하고 그에 따른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런 결과를 초래한 데 대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개각에 쏠리는 관심▼

곧 개각이 있을 것이라는 보도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방미(訪美)에 앞서 사전 조율의 임무를 띠고 워싱턴을 다녀온 이정빈(李廷彬)외교통상부장관과 임동원(林東源)국정원장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히 정보기관 책임자이면서도 통일부장관이나 외교부장관이 해야 할 일까지 해온 것으로 알려진 임원장의 퇴임여부는 주목된다.

김대통령으로서는 미국 새 대통령과 처음 만나는 이번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가 매우 컸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김대통령이 부닥친 것은 힘있는 나라 대통령과 그 참모들의 오만함이었다. 김대통령으로서는 오직 인내심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으리라 여겨진다. 미국측은 김대통령의 의견에 사사건건 토를 달았다. 북한은 변하고 있으니 개혁개방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김대통령의 말에는 못 믿겠다, 변화에 대한 가시적 조치를 보여줘야 한다, 투명성이 없다, 검증해봐야 한다는 식의 부정적 응답뿐이었다.

남한의 화해협력 상대인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 대해서는 ‘독재자’라고, 북한정권에 대해서는 ‘붕괴할 정권’이라고 비난했다. 북―미(北―美)협상 권유에 대해서는 ‘그쪽(북한)에서 먼저 긍정적 시그널을 보내야 하지 않느냐, 만나볼 생각 없다’는 게 부시대통령의 태도였다니 김대통령으로서는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미국이 겉으로는 ‘한국의 햇볕정책을 지지한다’ ‘남북문제 해결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지지한다’는 말을 했다고 해서 이것을 성과라고 한다면 정직한 평가랄 수 없다. 김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늘 지지해 온 미국의 대표적 진보파 기자마저 한미정상회담을 평하면서 ‘부시대통령이 김대통령의 뺨을 때렸다’는 심한 표현까지 했다.

또 하나 자존심 상하는 것은 탄도탄요격미사일(ABM)제한조약과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 문제다. 한―러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ABM 관련문구가 포함된 것을 두고 미국은 우리 정부를 심하게 몰아붙인 모양이다. ‘말로는 동맹국이라면서 감히 우리가 추진하는 NMD를 반대하고 러시아 편을 들 수 있느냐’는 다그침이었을 것이다. 결국 김대통령은 한―러 공동성명에 ABM문구가 들어가 논란이 빚어진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함으로써 미국의 불편한 심기를 달래려고 했다. NMD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우리가 미국에 맞서 NMD를 반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지 모른다. 하기야 처음에는 반대의사를 나타냈던 독일과 프랑스도 최근 지지쪽으로 돌아섰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우리는 독일 프랑스와는 여러 면에서 입장이 다르다. 미국의 NMD추진이 동아시아 및 한반도 안정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면밀히 따져 볼 문제다. 더구나 우리 외교부는 ABM문구를 공동성명에 넣은 것은 단지 국제사회에서 합의된 ‘표준 문안’을 사용한 것뿐이라고 설명해왔다. 그렇다면 김대통령이 그렇게 쉽게 유감 표시를 공개적으로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한―러 공동성명이 발표된 게 한미 정상회담보다 불과 열흘전 일인데 말이다.

▼정직한 정치 선행돼야▼

어떻든 한미간 대북(對北) 시각차를 구체적으로 확인한 것은 정상회담의 성과라면 성과다. 이런 시각 차이의 현실을 인정하면서 대북정책을 재점검하고 전열을 재정비하는 게 불가피한 시점인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이 일방적으로 제5차 남북장관급회담에 불참함으로써 남북관계에 불안감을 더해주고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앞으로 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조급해하거나 김대통령이 혼자서 너무 많은 것을 이뤄놓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반드시 여야의 힘이 모아져야 한다. 국민적 지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정직한 정치, 큰 정치가 선행돼야 한다.

어경택euh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