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람들은 圓(원)을 좋아한다. 동전과 탁자가 둥글고 건축물의 창이 둥글며, 교량의 교각 사이도 원형으로 처리하는 수가 많다. 추석 때 먹는 떡도 우리가 하현달 같은 송편을 먹는 것과는 달리 그들은 그야말로 보름달같이 둥근 月餠(월병)을 먹는다.
美人의 기준도 그러했다. 지금과는 달리 옛날에는 얼굴이 보름달처럼 둥글어야 했다. 우리도 잘 아는 楊貴妃(양귀비)는 비만에다 얼굴은 완전히 보름달이었다.
둥근 보름달을 좋아하는 것도 圓을 선호하는 심리상태와 무관하지 않다. 그들은 ‘하늘’이 바로 그런 둥근 道를 상징한다고 여겼다. 北京의 天壇(천단)은 거대한 원형건축물의 대표다. 이런 점은 인간관계에서 調和를 중시하게 되면서 더욱 강조돼 이른바 ‘圓滿한’ 품성이 처세의 제일 요건이 되기도 하였다.
이는 우리도 비슷하여 곧고 剛直(강직)한 것보다는 두루뭉실한 인품을 더 높이 평가했다. 너무 원칙에 충실하고 대쪽같으면 좋게는 생각하면서도 가까이 하지는 않게 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느니,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모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곧은 것(直)을 경계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적어도 內省의 修養에서 요구되었던 德目은 剛直이었다. 우리 조상들이 대나무를 四君子의 반열에 올려놓고 사랑하였던 것도 그 변치 않는 푸르름과 곧은 姿態(자태)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굽은 것을 경계하였으니 直은 善이요, 曲은 惡이라고 여겼던 탓이다. 그래서 몸을 굽힌다든가 뜻을 굽힌다는 것은 일종의 變節(변절)이 되었다.
그 ‘굽다’를 뜻하는 한자가 ‘曲’이다. 지금은 음악, 가락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그것은 본 뜻이 아니고 派生義(파생의)일 뿐이다. 자연히 曲으로 이루어진 단어치고 좋은 뜻은 많지 않다. 眞意를 잘못 받아들이면 曲解가 되며, 붓끝으로 잔꾀를 부린다든지 사실을 거짓으로 꾸며 쓰면 曲筆(곡필)이 된다. 특히 부정한 學問으로 세상에 아부하는 것을 曲學阿世(곡학아세)라 하여 君子로서 가장 꺼려야 할 덕목이었다.
歪曲이라면 사실을 不正(옳지 않은)한 방법으로 비틀어 굽히는 것이다. 그래서 인위적이고도 강압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 특히 歷史를 歪曲하는 것은 그 생명인 眞實을 부정하는 것이니 歷史를 파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일본이 그야말로 ‘歷史的’인 愚(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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