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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수의 러프컷]나는 꿈꾼다, 다른 영화를

입력 | 2001-03-15 19:04:00


박완서의 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을 재미있게 읽었다. 새삼 느낀 건 우리들 삶이 얼마나 별 볼일 없는가를 낱낱이 까발리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훌륭한 예술인가 하는 점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중년의 의사는 징그럽게 꼬이는 가족관계, 아무리 벌어도 늘 치사하게 부족한 돈 등에 시달린다.

그가 유일하게 마음의 평온을 얻는 곳이 초등학교 동창과의 ‘간통’ 현장이라는 사실은 씁쓸하지만 고개를 끄떡이게 만드는 면도 있다.

영화 ‘죠스’의 원작인 피터 벤츨리의 ‘죠스’도 ‘간통’ 하면 떠오르는 소설 중의 하나다. 일찍 결혼해 애를 셋이나 둔 30대 중반의 여인. 작은 해안도시 경찰서장의 아내인 그녀의 삶은 평화롭지만 권태롭다.

나른한 권태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식인 상어의 출몰이후 나타난 대도시 출신의 젊은 해양학자와 혼외정사를 시도한다. 저녁식사에 초대해 안면을 익혀 놓은뒤, 다음날 그가 묵고 있는 호텔로 전화를 해 둘만의 점심 약속을 한다.

외진 약속 장소로 가기 전에 그녀는 한 주유소의 일인용 화장실에 들어간다. 입었던 옷을 홀딱 벗고 거울에 몸을 비춰보며 탈취제를 뿌리고는 비닐 백에 넣어 온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해산물 전문 식당에서 그들은 시시한 음담패설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의중을 재삼 확인한다. 남자의 차를 타고 모텔로 가 정사를 나눈 그들은 다시 식당으로 돌아와 각자의 차를 타고 헤어진다.

집에 돌아온 여인은 옷을 벗고 혹시 몸에 무슨 자국이 남지는 않았는지 살핀다. 목욕을 끝내고 새 속옷으로 갈아입고 나서야 여인은 비로소 지난 정사를 찬찬히 음미한다. 혼외정사를 저지른 평범한 여인의 냉정한 용의주도함. 그것이 읽는 이의 마음을 더 섹시하게, 더 조마조마하게 하고 조금쯤 슬프게 만든다.

물론 영화 ‘죠스’에선 이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이 영화의 감독 스필버그는 상어, 오직 상어에만 몰두한다. 따라서 소설과 영화의 결말도 좀 다르다. 영화에서 해양학자는 살아남지만, 혼외정사를 저지른 소설 속에서는 비참하게도 상어 밥이 되어 죽는다.

죄지은 자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일종의 ‘장르의 규칙’인 셈이다.

‘간통’ 좀 했기로서니 꼭 그렇게 가혹한 벌을 받아야 하다니, 규칙이란 잔인하고 보수적이기 짝이 없다. 실제로 결혼을 한뒤 우린 누구나 한 번쯤 ‘다른 사람’을 꿈꿔보기 마련 아닌가? 아니면 말고. 나는 다음 작품으로 ‘간통 영화’를 준비 중이다. 거기에서 장르의 규칙 따윈 전적으로 무시해볼 생각이다.

namuss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