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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사드와 권력, 누가 새디스트인가

입력 | 2001-03-15 19:04:00


'퀼스(Quills)’는 새디즘(가학적 음란증)으로 유명한 사드 후작(1740∼1814)의 말년을 다룬 영화다.

프랑스 절대왕정시대 귀족 출신이었던 사드는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금기로 남아있는 온갖 성적 일탈을 실천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글로 옮긴 작가였다. 온갖 변태적 성묘사로 가득한 ‘소돔의 120일’이나 ‘저스틴’ 등이 그의 대표작.

깃털 펜을 뜻하는 원제가 의미하듯 영화는 인간의 어두운 성적 욕망의 세계를 탐험했던 사드가 아니라 창작의 자유를 갈구하는 작가로서 그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생애의 27년을 감옥과 정신병원에 유폐된 채 살아야했던 사드(제프리 러시)는 나폴레옹의 집권기였던 말년엔 샤렝턴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하지만 가족의 후원과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지닌 병원장 쿨미어 신부(조아킨 피닉스)의 배려로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그가 쓴 음란소설이 밖으로 유출되면서 사드의 쾌적한 삶은 위협받기 시작한다. 사드는 하녀 마들렌(케이트 윈슬렛)을 통해 자신의 창작물을 외부로 몰래 반출해 왔던 것.

나폴레옹 정부에서는 그를 감시하기 위해 정신과 의사 로이 콜라박사(마이클 케인)를 파견한다. 예술을 통해 정신병을 심리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 쿨미어 신부와 육체적 고통을 가해야 한다고 믿는 로이 콜라 박사는 사드의 처우를 놓고 대립한다.

이를 지켜본 사드는 병원 자선파티에서 로이 콜라의 위선적인 성생활을 조롱하는 연극을 보란 듯 상연한다. 하지만 그 댓가는 집필의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으로 돌아오고 이때부터 영화에서는 검열에 저항하는 한 인간의 처절한 사투가 펼쳐진다.

펜을 빼앗기면 닭뼈로 대신하고 종이를 빼앗기면 침대 시트와 옷으로 대체하는 사드의 모습은 끊임없이 정신적 탈출을 꿈꾸는 빠삐용이라 할 만하다. 끝내는 자신의 피를 잉크삼아 신성모독으로 가득 찬 글귀를 써내려가는 모습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절규에 가깝다.

‘샤인’에서 광기어린 피아니스트 연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제프리 러쉬는 또다시 광기어린 연기로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타이타닉’의 케이트 윈슬렛은 풍성한 몸매와 물기어린 입술로 성(쿨미어 신부)과 속(사드)을 동시에 넘나드는 관능미를 발산한다. 감독 필립 카우프만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영화화한 ‘프라하의 봄’과 ‘북회귀선’의 작가 헨리 밀러의 성적 편력을 그린 ‘헨리와 준’ 등을 통해 인간 성욕의 무의식 세계를 파헤쳐왔다. 17일 개봉. 18세이상 관람가.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