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보험 통합과 의약분업 정책 실패로 발생할 4조원의 적자(적립금 감안시 3조원)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보험료 인상과 국고 추가 투입은 형식만 다를 뿐 국민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똑같다.
이에 따라 정책효과를 잘못 예측하고 무리하게 추진한 정부가 국민에게 돈을 더 내라고 요구하기에 앞서 잘못된 부분을 사과하고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국민 허리만 휜다〓의약분업은 의보재정 악화에 결정타를 날렸다. 연간 4조원 이상의 추가지출 요인 중 자연 증가분(9000억원)을 제외한 나머지가 분업시행 과정에서 생긴 것.
정부가 의료계를 달래려고 수가를 인상하면서 국민불만을 의식해 본인 부담금을 늘리지 않았다. 결국 최근 3개월간 의료기관에 지급된 진료비는 분업 전과 비교할 때 51% 늘었지만 총 진료비 중 환자부담은 오히려 56.7%에서 44.6%로 줄었다.
‘파이’가 커지면서 생긴 혜택은 대부분 동네의원에 돌아갔다. 지난해 11월∼올 1월의 경우 전체 동네의원 진료비가 한달 평균 5293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서 40% 가량 늘었다.
▼국고 1조 추가투입 불가피▼
▽개원의 알짜 수입〓동네의원 한 곳당 월 진료비는 분업 전(지난해 5월) 2478만원에서 분업 후(2000년 12월) 2669만원으로 늘었다.
외형상 진료비 증가는 7.7%에 불과하지만 약 560만원의 약값이 대부분 없어졌고 처방료가 140만원에서 742만원으로 5배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개원의들의 ‘알짜 수입’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전에는 곧바로 약국에 가던 환자들이 분업시행 뒤 일단 병의원에 들르면서 외래환자 수와 진료비 지급액이 늘어난 건 어쩔 수 없다. 연간 6000만건에 이르던 임의조제가 사라진 셈이고 이는 약품 오남용 방지에 기여하는 게 분명하다.
그러나 국고와 적립금을 모두 끌어다 쓰고도 6∼7월경 의보재정이 완전히 펑크남에 따라 의보료 20∼30%인상과 국고 1조원 추가 투입이 불가피해 국민, 특히 직장인들의 불만이 커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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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사용량 안 줄어〓분업 전인 지난해 5월과 분업 후인 12월을 비교하면 동네의원 환자가 20% 가량 늘었다. 약국에서 곧바로 약을 사 먹던 사람들이 일단 의사의 진료를 받으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약 처방일수는 3.06일에서 3.69일로 늘고 처방전 1건에 사용되는 약품 수는 5.87품목에서 5.58품목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환자들이 종전과 비슷한 양의 약을 먹는 날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처방 1건당 먹는 항생제와 주사용 항생제를 같이 처방하는 경우는 100건 중 17건. 약품 남용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는 이런 ‘문제성 처방’은 종합병원(3.8%)과 중소병원(11.2%)보다 동네의원(20.7%)이 훨씬 많았다.
항생제 사용품목은 처방 1건당 0.90종에서 0.89종으로 약간 줄었지만 지난해 9월(0.8종) 이후만 보면 계속 늘어나는 추세여서 항생제 남용 억제라는 분업 취지와 역행한다는 분석이다.
▽고가약 처방〓고가약 처방증가는 일장일단이 있다. 같은 성분의 약이 적게는 3∼4종에서 많게는 20여종까지 있는데 그중 가장 비싼 약(대부분 오리지널 약품)을 처방한 비율이 43%에서 59%로 증가했다.
의사가 약값 마진을 기대하지 않고 고가약을 처방하면서 환자는 품질 좋은 약을 먹게 됐다. 그래도 환자 부담은 그대로다.
건당 평균 약값은 6040원에서 8050원으로 늘었지만 환자는 전처럼 1000원만 낸다. 나머지는 모두 보험에서 지급해 재정악화로 이어진다.
의사와 약사간 담합이 심하다는 징후도 있다. 한 의료기관의 처방전을 71% 이상 소화하는 약국이 전체의 4분의 1. 환자가 가능한 한 병원과 가까운 약국을 찾는 경향이 많지만 의사와 약사가 환자를 유도한 결과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어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song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