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사업의 계속 여부를 놓고 정부 부처들 사이에도 의견이 양분돼 혼선을 빚고 있다. 그러나 당정간 협의에서 그 최종 결정이 이달 말로 미뤄진 가운데 그 동안의 합동 조사 결과에 대한 견해도 계속 엇갈리고 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미 속에서 새삼 찬반의 이유를 되뇔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투자금 아깝지만 환경이 먼저▼
각종 환경 관계 국제협약이 많지만 한결같이 강조하는 것은 국가의 모든 개발 정책에 환경문제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만금 개발에서도 정부의 환경 전문 부서의 의견이 존중되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하지만 지금의 추세는 그 반대 방향인 것 같다. 이미 막대한 돈이 투자됐으므로 중단할 수 없다는 논리가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수질 개선책을 써도 농업용수가 어렵다거나 생산성으로 보아 갯벌이 낫고 또 사업이 진행될 경우 전국 갯벌의 8%를 잃는다는 등 막대한 환경 손실에 관한 자료가 나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투자됐으니 계속해야 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마지막으로 어째서 시행착오의 교훈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8300억원의 국고를 탕진한 시화호의 교훈을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남 대불공단 간척지에 입주 업체가 드물어 현재 전체 벌판이 썰렁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어떤가.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바로 새만금의 고장인 전라북도에 있는 대학의 연구실이다. 내가 타향인 이곳에 온 것은 꼭 25년 전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몇 달 후면 정년퇴임해야 한다. 그러나 이곳은 나의 생활과 학문적 성장의 바탕이었고 자식 양육도 이뤄졌으니 제2의 고향이요 은혜의 고장이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나는 이곳이 주는 전원적 분위기와 지역사회가 주는 친근감으로 마음에 평화와 안도를 느꼈다. 그래서 첫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이곳이 인구 30만명의 소도시여서 왔노라, 그러나 50만명으로 늘어나면 다시 다른 데로 가겠노라고 말했다. 바로 조용하고 쾌적한 자연의 아름다운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새만금사업을 두고 돌아가는 분위기는 어떤가. 인구도 적고 도세(道勢)도 약하니 공단이 들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대론을 감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삭막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찬성과 적극 추진을 말하는 사람은 관계, 학계를 막론하고 거의 보직자들이다. 다시 말해 찬성론에는 실체가 안보인다. 그런데도 반대의 목소리가 제대로 튀어나오지 못한다. 여기에 이 고장 언론도 함께 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민주 사회이고 열린사회인가.
나는 수년 전에 서해안 모래언덕과 갯벌에 사는 곤충을 연구하느라 여러 번 바다를 찾았다. 내가 자문을 얻기 위해 초빙한 폴란드 학자를 갯벌에 데리고 갔다. 마침 낙조의 아름다움 속에 펼쳐진 광활한 갯벌의 반짝임을 보고 그는 탄성을 질렀다. 갯벌 생태학 전문가인 그도 이렇게 아름답고 광활한 곳은 본 적이 없노라고 했다. 그 후 나는 폴란드를 방문했다. 바르샤바 동북쪽의 넓은 습지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수량(水量)을 조절하고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며 망루(望樓)도 곳곳에 있어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돼 있었다. 재정도 어려운 나라에서 그렇게도 자연을 사랑하는 열정과 가치관이 행정에 살아 숨쉬는 현장을 본 것이다.
▼자연의 혜택을 값매길 수 있나▼
이제 우리는 다른 나라나 도보다 조금 못살아도 천혜의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여유와 품위를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저 거쳐가는 나그네일 뿐 자연은 영원히 미래 세대의 것이기 때문이다. 문득 어릴 때 애송했던 이 고장 목가시인 신석정의 시가 생각난다. 이 곳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이 아니었다면 그렇게도 잔잔하고 아름다운 시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 새만금사업이 진행돼 세계 최장의 방조제와 최대의 매립지가 생긴다 해도 옆의 호수가 썩고 있으면 그 최장, 최대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현재 쾌적한 자연에서 전국 으뜸인 이 고장의 최대 부가가치가 그때는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 동안의 그 많은 경제성 분석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의 값은 아무리 큰 숫자를 써도 결코 나타낼 수 없을 것이다.
이병훈(전북대 교수·생물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