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산업의 메카인 미국 실리콘밸리에 찬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닷컴기업들의 몰락 때문. 장비업체나 소프트웨어 업체들도 추위를 타기는 마찬가지다.
소프트웨어업체인 시벨시스템즈는 이런 가운데서도 흔들림 없이 고성장을 구가하는 몇 안되는 대형 업체 중 하나다. 이 회사의 지난해 4·4분기(10∼12월) 매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11%나 증가한 5억8000만달러에 이르렀다. 이에 힘입어 시벨시스템즈는 지난해 미국의 경제잡지 비즈니위크가 선정한 세계 100대 IT 기업 중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탐 시벨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93년 설립한 시벨시스템즈는 요즘 한창 잘나가는 고객관계관리(CRM) 분야의 최고 업체다. 선마이크로시스템 IBM 브리티시텔레콤 등의 영업판매망이나 고객서비스 부문의 소프트웨어를 제작하는 일이 이 회사의 핵심 사업 영역. 시벨 회장이 회사를 창업할 당시 400여개 업체가 CRM시장에 도전했지만 지금은 절반정도만 살아 남았다.
오라클에서 잔뼈가 굵은 시벨 회장은 대부분의 소프트웨어업체 창업자와는 달리 뛰어난 기술자가 아니었다.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했지만 그의 주특기는 세일즈. 그의 경영모토는 ‘고객만족’이었다. 미국 언론도 그에게 ‘고객 만족의 왕’이나 ‘슈퍼 세일즈맨’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시벨 회장은 외부 업체에 의뢰해 고객 기업들과 6개월마다 인터뷰를 갖고 고객들로부터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의견을 듣고 있다. 고객 업체들의 평가는 직원들의 인사고과와 임금에 반영된다. 시벨 회장의 고객 중심 경영은 직원들의 옷차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시벨시스템즈는 직원들에게 단정한 옷차림을 요구한다. 고객과 접하는 부서는 반드시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으로 출근해야 한다. 여성들로 마찬가지로 스타킹에 정장 차림으로 근무한다. 흔히 반바지 차림에 자유스러운 업무를 연상시키는 미국의 소프트웨어업체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시벨 회장은 지난해 신경제 주창론자 중 하나인 비즈니스위크로부터 25인의 위대한 경영인 중 1명으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실리콘밸리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인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고객 중심 경영이 시벨시스템즈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연매출 10억달러를 돌파한 기업으로 기록되는 원동력이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조 성 우(와이즈인포넷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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