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신도시에 사는 주부 이모씨(31). 네 살 난 딸아이를 데리고 외출할 때 열 번 중 다섯 번 정도는 맞닥뜨려야 하는 신도시 풍속 때문에 짜증이 난다.
친절한 얼굴의 주부가 다가와 “아이가 너무 예쁘다”로 시작해 “어디 살지? 이름은?…”을 거쳐 “애가 똑똑해지려면 이 학습지를 보셔야 돼요”로 결말을 짓는 틀에 박힌 상술이 그의 외출을 늘 짜증스럽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다정하게 다가오는 여성이 있으면 대꾸를 않고 걸음을 재촉하는 방법을 쓴다.
며칠 전 그는 또다시 친절하고 다정한 여성을 만났다. “저희도 그 아파트에 살아요. 어머, 우리애랑 동갑이네.”
하지만 그의 속마음. ‘같은 아파트에 산다고? 나는 안 속아요 아줌마.’
눈길도 주지 않고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서려는데 옆동 현관으로 들어서는 그 주부가 다정하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전 000호에 살아요. 날 풀리면 애들 데리고 호수공원에 같이 가요!”
이씨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진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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