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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호의 메디컬&로]수술동의서 냈어도 과실 제소가능

입력 | 2001-03-20 18:48:00


황진수씨(37)는 빙판길에 미끄러지면서 반대 차선을 넘어 도로 아래에 있는 밭으로 추락하면서 뇌를 크게 다쳤다. 황씨는 곧 인근 중소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처치를 받은 뒤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의사로부터 설명을 듣고 난 뒤 자유 의사에 따라 수술을 승낙하며 수술 중이나 수술 후 경과에 대해 어떤 민 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한다.’

사고 소식을 듣고 황급히 달려온 황씨의 처에게 의사는 수술동의서를 건넸다.

처가 서명을 망설이자 의사는 “수술동의서를 쓰지 않으면 다른 병원으로 가서 수술받으라”고 재촉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뇌출혈이 심해 사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황씨의 처는 어쩔 수 없이 수술동의서에 서명했다.

전신마취 상태에서 수술을 받던 황씨는 갑자기 심장마비 증세를 일으켰고 마취과 전문의는 즉시 기관에 관을 넣어 산소를 공급하려고 했다. 그러나 황씨는 선천적으로 목이 짧고 뚱뚱하며 턱이 기형적이어서 쉽게 관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취의는 작은 크기의 관으로 여러번 바꾼 끝에 간신히 삽입에 성공했으나 이미 뇌에 손상을 입어 식물인간 상태로 있다 세상을 떠났다.

황씨 가족은 마취 전 신체 기형 여부를 검사한 다음 안전하게 관을 넣어야 함에도 이를 소홀히 해 황씨가 ‘저산소 뇌손상’으로 죽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병원측은 처가 서명한 수술동의서를 제시하면서 “소송을 하지 않기로 서명했으므로 소송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포기하는 ‘청구포기 특약’은 위법한 행위까지 포기한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면서 병원의 의료과실 책임을 인정했다. 마음이 급한 응급환자나 그 가족에게 ‘잘못이 있어도 민 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수술동의서는 당연히 무효지만 이를 모르는 ‘착한’ 환자는 눈물을 머금고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www.medcon.co.kr

신현호(의료전문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