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들여다보는 섬세한 눈길"
존 윌리엄스, 한스 짐머, 앨런 실버스트리… 웬만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 이름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바로 유명한 영화음악(Original Score) 작곡가들이지요. 하지만 태평양 건너 머나먼 할리우드에서 활동중인 그들은 잘 기억하는 반면 정작 우리 나라 영화음악가들의 이름 석 자는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나마 좀 알려졌다면 임권택 감독의 작품에서 국악을 접목시킨 영화음악을 들려줬던 김수철 정도일까요?
하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나라 영화음악이 대중의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97년 의 사운드트랙부터였으니까요. 물론 90년대 들어서부터 김수철( ) , 원일( ), 이동준( ) 등이 우리 영화음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긴 했지만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진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자, 이쯤해서 본론으로 들어가죠.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음악가는 '조성우'입니다. 조성우는 96년 를 시작으로 SBS TV 드라마 에 이르기까지 총 12편의 영화 및 TV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모두 사운드트랙으로 출시되어 있죠.
조성우의 음악 스타일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데뷔작인 부터 로 이어지는 재즈 스타일입니다. 우리 나라의 1세대 재즈 이론가이자 작곡가였던 이판근 교수에게 사사 받은 재즈에 대한 그의 재능과 열정이 바로 이 작품들에서 보여집니다. 올해 1월 개봉된 영화 의 음악도 이런 재즈 스타일인데 예전에 비해 한결 성숙되고 안정된 모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앨범 속지에서 "영화음악의 진정한 전문성과 깊이에 대해 새로이 눈뜨게 해준 소중한 전환점"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은행원 김봉수(설경구)와 보습학원 선생님 정원주(전도연)의 풋풋한 사랑을 다룬 이 영화에서 조성우의 스코어는 두 사람의 소박한 사랑을 관객들에게 좀더 친근하게 다가가도록 도와줍니다. 왈츠에서 보사노바로, 프리 스타일 재즈로 자유롭게 연주되는 이 스코어들은 캐릭터의 감정 변화에 따라 진행됩니다. 앨범에는 극중 두 배우의 대사와 함께 이현우가 부른 주제곡도 실려 있어 영화음악 마니아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부담 없이 다가갈 만합니다.
조성우 스코어의 두 번째 스타일은 로 대표되는 서정적인 스코어들입니다. 아마도 조성우의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의 대부분은 피아노와 현악기의 협연으로 이루어지는 '조성우식 서정성'에 매료되어서일 겁니다. 에서 캐릭터의 일상과 내면에 대한 빼어난 묘사를 담은 스코어를 들려줬던 그는 에서 금기를 뛰어넘는 두 사람의 사랑을 미니멀리즘적인 스코어로 표현합니다. 에서는 공포영화라는 장르를 비틀어 아주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기도 했죠.
의 음악은 바로 이 '조성우식 서정성'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자 그 서정성이 정점에 달한, 작년도 최고의 오리지널 스코어로 꼽을 만한 작품입니다. 첫 번째 트랙 '알래스카-순애보 프롤로그(Alaska -純愛譜 Prologue)'에서부터 마지막 수록곡 '메인 테마'까지 우인(이정재)과 아야(다치바나 미사토)가 2000년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들려주는 세련된 러브그라피에 조금의 빈틈도 없이 딱 들어맞는 음악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특히 아야의 마지막 고별공연(?) 장면에서 쓰인 'Wander Wonder Land'나 아야의 테마와 우인의 테마가 함께 어우러진 '메인 테마'는 놓칠 수 없는 걸작입니다.
조성우의 다음 작품은 3월24일 개봉되는 인데요. 의 메인 테마를 뉴에이지 그룹 시크릿 가든이 연주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조성우의 서정적인 선율이 시크릿 가든의 섬세한 손길과 만났을 때 과연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자못 기대가 됩니다.
길선자(영화음악칼럼니스트)
♬ 노래듣기
-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Title Song
-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 Main Theme
- `순애보' - `Wander Wonder Land
- `순애보' - `Main The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