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자녀 둘을 데리고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민간 김모씨(42·여)는 올 1월말 주택을 사려다 깜짝 놀랐다. 풀러턴 어바인 등 중고교 학군이 좋은 지역의 집 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데다 빈집이 나오는 즉시 누군가가 사버렸기 때문.
그러나 김씨가 정말 놀란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부동산중개업자로부터 “집을 산 사람의 상당수가 자녀를 미국으로 유학 보낸 한국인 부모이며 한국인들은 집 값의 10∼20%만 현금으로 내고 나머지는 은행에서 장기대출받는 미국인과 달리 집 값 전부를 현찰로 계산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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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은행 명동지점에선 올 들어 상담원 한 명이 하루 평균 10명의 고객을 대상으로 미국 재무부채권 등에 투자하는 해외 뮤추얼펀드에 대해 상담한다. 이 중 3명 정도가 평균 2000만∼3000만원씩 가입한다는 것. 선수수료로 1∼3%를 떼고 매년 운용수수료도 내야 하지만 가입자는 지난 10월 말 대비 53% 증가했다.
▼글 쓰는 순서▼
- 환율 왜 오르나
- 우리 기업 준비됐나
- 달러로 계산할게요
- 고환율시대 환테크
이 은행의 한 관계자는 “뮤추얼펀드에 가입하는 고객의 대부분은 ‘달러를 살 수 있느냐’고 문의해온 사람들”이라며 “상담원들은 ‘달러를 사서 외화예금에 넣어둘 경우 금리가 낮으므로 해외펀드에 가입하라’고 권한다”고 설명했다.
고액 자산가가 많은 하나은행 프라이비트뱅킹팀의 투자상담사도 “지금까지는 환리스크를 고려해 고객에게 해외 뮤추얼펀드를 팔지 않았다”며 “그러나 달러자산에 투자하고 싶다는 요구가 많아 해외지점을 연계한 상품 개발 등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원화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되면서 달러 및 달러표시 자산의 보유 심리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게다가 올해부터 개인의 외환거래가 완전 자유화돼 이 같은 심리를 부추기고 있다는 게 금융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원―달러환율의 불안에 즉각 반응하고 있는 외화정기예금도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환율이 불안정했던 1월 외화예금 잔액은 약 113억달러. 환율이 안정세를 찾던 2월엔 103억달러로 감소했다 3월 들어 증가로 돌아섰다. 조흥은행 외환자금운용팀의 김병돈 과장도 “작년 말 1254원이던 원―달러환율이 50원 정도 올랐다”며 “학비를 보내는 부모로서는 약 5%의 추가 부담이 생기는 만큼 환율이 오르면 가수요가 생긴다”고 말했다.
올 들어 해외 직접투자에 대한 문의도 급증했다. 외환은행 외환업무팀 김기형 과장은 “지난해 하루 1건도 안되던 문의 전화가 올 들어 3, 4건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식 통계로 보면 송금, 직접투자 등에서 외화유출의 조짐은 없다. 국세청 국제조사과 윤종훈 과장은 “1만달러 이상의 증여성 송금 건수가 예년과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송금이나 직접투자를 할 경우 신분과 거래 명세가 국세청에 통보되는 것을 꺼려 음성적인 방법으로 해외로 달러를 내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