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IT경기가 되살아날까요.
엄밀히 따져 IT경기라는 말은 어폐가 있어 보입니다. 특정분야의 경기가 '나홀로'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전반적으로 경기가 되살아나면 그 부분인 IT산업도 활기를 되찾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해당 되겠지요.
이와관련, 논란의 대상이 되고있는 게 경기저점입니다. 이 논란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분석 뿐 아니라 감성적인 기대감과 희망까지 뒤섞여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한때 청와대를 비롯, 정부 일각에서는 "경기가 작년말로 저점을 통과했다"는 주장을 제기했습니다. 1월들어 갑작스레 코스닥이 들뜨기 시작했고 종목에 따라 두어달만에 주가가 3,4배가량 뛰는 기현상이 빚어지자 나온 말입니다. 주가가 뛰다보니 이 '저점통과론'에 상당한 지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청와대 내부에서부터 저점통과에 대한 반론이 곧바로 나왔습니다. '통과론자'들은 이에대해 "경기는 마음 먹기 달렸다. 이미 저점을 통과했는데도 언론이 지나치게 경제를 비관하고 있다"며 주장을 견지했습니다. 반면 '미통과'를 주장하는 측은 "경제를 정치적 시각으로 해석하고 있다"며 반박에 나섰습니다.
이런 논란은 부시대통령 취임이후 미국의 경기가 '경착륙'할 우려가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특히 그동안 미국경제를 견인했던 IT기술주들의 경영실적이 기대이하로 나타나자 사실상 종식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저점통과는 아직 멀었다'는 데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하고 있는 것입니다.
논란의 초점은 따라서 '언제 저점이 올 것인가'로 옮겨왔습니다. 대부분의 기업인들은 2/4분기를 저점으로 보고있는 듯 합니다만 마땅한 과학적 근거를 내놓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와관련, 20일 산업연구원(KIET)은 하반기 들어 기업구조조정 및 대우차 처리가 일단락되고 미국경기가 회복되면 통신기기, 컴퓨터, 반도체 등 IT경기도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산업연구원은 이날 발표한 '2001 산업전망'을 통해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섬유산업은 '회복지연' 가전, 일반전자부품, 일반기계는 '소폭 회복' 반도체 통신기기 컴퓨터는 '본격회복' 조선은 '지속회복'으로 분류했습니다. 다른 어떤 산업보다 IT업종을 밝게 본 것이지요.
그러나 산업연구원이 '전제'로 내세운 미국의 경기회복이 과연 예상대로 이뤄질 지는 미지수입니다. 또 산업연구원의 경기저점 예측도 과학적 분석 못지않게 다분히 '기대감'이 섞여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습니다.
결국 관건은 미국의 경기회복인 듯 합니다. 이와관련해 미국의 경기를 예측하는 흥미있는 분석지표가 있어 소개할까 합니다. 이 지표도 역시 하나의 분석툴에 불과하지만 상당수 경제분석가들이 이를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 분석을 토대로 할때 경기저점은 최소한 4/4분기 이후가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굿모닝투신 기업분석팀 나홍규팀장은 최근 동아일보 IT팀과 가진 'IT경기전망 세미나'에서 NAPM지수라는 것을 통해 경기저점을 예측했습니다. 나팀장은 삼성증권에서 코스닥팀장을 맡은 적이 있고 IT분야의 흐름에는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NAPM지수는 미국의 전국구매관리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Purchasing Management)가 만든 것으로 50년간의 트랙레코드를 갖고있다고 합니다. 이 NAPM지수는 미국의 GDP 성장률을 대략 4,5개월정도 선행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NAPM지수가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하면 성장률은 둔화된다고 합니다. 특히 40선 밑으로 NAPM지수가 떨어지면 GDP성장률은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NAPM지수가 작년말을 전후해 40선을 향해 추락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추락의 각도는 84년 무렵처럼 매우 가파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당연히 GDP성장률도 마이너스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21일 진념 재정경제부장관이 미국의 경제의 경착륙가능성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이같은 추세를 감안하면 이변이 없는한 금년 4/4분기까지 미국 경기는 하강세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는 게 나팀장의 '분석'입니다.
비단 이 지수가 아니더라도 IT경기의 대표주자랄 수 있는 PC생산량을 보면 비관론은 더 무게를 느낄 수 있습니다. 국제적 IT조사기업인 IDC는 당초 금년 PC생산이 13∼15%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만 ABN암로 등은 최근 이 성장률을 6∼7%로 대폭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ABN암로 뿐 아니라 상당수 PC생산업체들도 성장둔화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PC의 핵심부품인 CPU를 생산하는 세계적 기업 인텔이 '눈물을 삼키며' 5000명의 인력을 삭감하겠다고 이달들어 발표한 것도 PC시장의 현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를 토대로 본다면 IT경기의 저점은 오히려 내년초로 더 '연기'될 수도 있다는 추론마저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터넬에 들어서면 끝이 있는 법입니다. 언젠가 경기는 다시 호황을 향해 줄달음 칠 것이 분명합니다. 다만 그토록 기대했던 저점이 지나 막 상승분위기를 타기 시작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꾸로 '저점'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할지 모른다는 점이 오히려 걱정이 됩니다. 섣부른 낙관에 빠졌다가 낭패를 볼까 두려워하는 마음이겠지요. 마치 봄이 왔지만 봄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한 경제전문가는 이런 지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경기가 되살아나는데 몇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한데 그중 심리적인 측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다시말해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는 긍정적 마음가짐을 가질 때 비로소 경기상승세가 제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경기는 저점을 통과해 상승국면으로 들어설 것입니다. 문제는 그 시점이 4/4분기냐, 내년1/4분기냐에 크게 달려 있지는 않다고 봅니다. 그 상승세가 닥쳤을 때 그 흐름을 누가 제대로 타고 오를 수 있느냐에 승부의 관건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점에 대한 분석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 보다는 언젠가 닥칠 상승세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 나가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