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쫄깃… 담백… 생각만 해도 군침 절로!
비가 오는 날 마방(馬房)에서 말이 새끼를 낳으면 그 새끼의 몸에 평생토록 얼룩이 진다고 한다. 그래서 어미 말이 슬프게 운다고 한다. 조랑말에 대한 제주의 속설이다. 새끼는 12개월 만에 낳는데 제주 여자도 그 말고삐 줄을 넘으면 12개월 만에 애를 낳는단다. 이 또한 제주 속설이다. 이로 보면, 말에 대한 경외심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알 수 있다. 말은 영농의 수단이었고 교통의 수단이었다. 산간 지방에서 조이삭을 빻거나 메밀가루를 빻는 일도 조랑말이 그 연자매를 돌려서 했다.
최근 말고깃집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고수목마(古藪牧馬)가 그 대표적인 예. 고수목마(064-712-3690·김경찬·31)는 신제주시 연동 뉴크라운 호텔 후문에 있는 순 향토 음식점이다. 공항에서 가깝고 주위에는 그랜드호텔, 밀라노 호텔, 구신한백화점, 신라면세점 등이 있어 일본 관광객이 붐비는 곳이다. 원체 마사시를 좋아하는 그들인지라 마사시 또는 샤브샤브, 말초밥쯤은 들고 가는 것이 그들의 자랑이다.
그래서 고수목마에서는 일품정식인 ‘고수목마 정식’과 ‘구마모토(能本) 정식’을 항상 따로 준비해 놓고 있다. 고수목마정식은 말뼛가루(수프), 말재골, 육회, 말고기 야채요리, 마불고기, 마갈비찜, 말스테이크 등이 코스별로 따라 나오고 구마모토 정식은 역시 말뼛가루, 말재골, 육회, 마사시 야채요리, 마불고기, 마갈비찜, 말스테이크, 말초밥 등이 코스요리로 나온다. 여기에다 메밀빙떡, 새로 개발된 고소리(좁쌀 증류주)나 텁텁한 좁쌀주까지 일품 메뉴로 어우러진다.
일본인이 서울에 와서 겨우 대접받는 음식이 ‘멍멍탕’이나 장어구이겠지만, 제주에 와서 마사시를 대접받는다면 이는 그들로서도 분에 넘치는 접대다. 더구나 구마모토 정식의 코스를 다 돌자면 일본에서는 5만엔쯤인데, 이곳에 와 싼값에 말피나 지라와 간까지 들고 나면 한국의 선비들이 말총갓을 쓰고 우쭐거리듯 우쭐거릴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제주에 와서 선물을 살 때는 말뼈나 마사시를 그대로 직송해 간다. 말뼈는 관절염, 류머티스, 골다공, 신경통 등 성인병에 특효가 있는 비방으로 전해오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한라산의 명물로는 소금에 절인 마육포와 흰사슴포, 그리고 병귤이 3대 진상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흰사슴포가 없어지고 귤밭이 망해 자빠진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세계 3대 명문가의 음식으로는 흔히 포아그라(거위 간), 캐비어(철갑상어 알), 원숭이골 요리가 꼽힌다. 거기에 제주 조랑말고기를 내세워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일본의 마사시나 유럽의 말스테이크는 비프스테이크보다 선호할 음식이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이 말스테이크를 들고 새로 개발된 제주 위스키 마혈주나 고소리에 취한 채 조랑말 경주장에 들러 큰 코를 킁킁거린다면 뱃길에 떠밀려온 하멜(‘하멜표류기’의 저자) 일행을 본 듯 신기로울 것이다. 이것이 탐라국의 새로운 건설이며 꿈이다. 그때쯤은 360여 오름 갈숲 속에서 정당벌립을 쓴 말몰이 뻘때추니들의 쇤 목소리도 저 최초의 말목장이 있는 수산벌까지 흘러들 것이다.
천연기념물 347호인 조랑말은 고려 충렬왕 2년 몽골이 제주를 점령하면서 군용과 농경 사냥용으로 들여왔다. 제주 사람은 신경통, 중풍, 간질환 환자에게 말뼈를 영약으로 썼다. 말젖은 고혈압 결핵 간염에, 고기는 감기예방 당뇨에, 글리코겐 함유량이 우유보다 4배나 많은 말피는 근육통에, 말기름은 화상에 특효가 있을 뿐 아니라 비타민E가 풍부하여 보습력이 뛰어남도 알았다. 지금도 말젖은 칼로리가 적고 단백질과 탄수화물, 철, 인 등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몽골 유목민 사이에서는 간염 치료제로 쓰이고 있다.
조랑말이란 말은 ‘과일나무 아래로 다닐 만한 말’이란 뜻으로 원래 몽골어로 ‘과일나무’를 뜻하는 조랑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러니 탐라인이여, 안심하라. ‘말은 서울로 사람은 제주로’란 말이 뜨기 시작할지 누가 알겠는가. 귤밭이 목초지로 변할 날도 멀지 않았다. 광우병 시대가 오면 제주 조랑말 스테이크가 유럽을 휩쓸 때가 올 테니 말이다(고수목마 정식코스 : 2만원, 구마모토 특선 코스 : 2만5000원).
[송수권 시인]
◇ Tips
고수목마
제주는 예로부터 말을 방목한 것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특히 제주시 일도동 남쪽에는 속칭 고마장(古馬場)이라고 하는 광활한 숲(藪)이 있어 수천 마리의 말을 방목했다는데, 한때는 한라산 기슭에 7만 마리가 넘는 말이 뛰놀았다고 한다. 이처럼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한라산 중턱의 탁 트인 초원지대에서 풀을 뜯고 자유롭게 뛰노는 조랑말떼의 평화로운 모습은 제주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장관이었는데, 이를 ‘고수목마’(古藪牧馬)라 하여 영주십경의 하나로 칭송하였다.
정당벌립
정동(댕댕이 넝쿨)으로 만든 모자의 일종으로 정동벌립이라고도 한다.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농부들이 밭일을 할 때 사용하기도 하는데 마소를 치는 목자들에게 이상적인 모자다. 제주의 따가운 햇볕, 먼지, 비바람을 막아줄 뿐 아니라 가시에 걸리더라도 잘 벗겨지지 않는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