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를 개혁 않고는 …
1637년 3월 25일, 조선 국왕 인조는 초라한 복장으로 남한산성을 나섰다. 이윽고 그는 삼전도에서 청 태종 홍태시(紅太豕)에게 항복했다. 높다랗게 쌓은 수항단(受降壇) 위에 거만하게 앉은 홍태시에게 세 번 큰절을 올리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렸다. 홍태시란 ‘붉고 큰 돼지’를 뜻한다. 만주족을 멸시하던 조선이 태종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인간’이 아닌 ‘돼지’에게 인조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병자호란은 그렇게 끝났다. 이후 조선 지식인들은 저주를 퍼부었다. “네까짓 오랑캐들의 운수가 얼마나 더 가겠느냐”고.
그로부터 7년 후 청은 베이징(北京)을 차지하고 한족(漢族)의 왕조인 명나라를 대신해 중원의 주인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순치제, 강희제, 옹정제 등 성군들이 잇따라 즉위하면서 국운은 날로 융성했다. “오랑캐의 운세는 100년을 못 간다”고 했던 조선 지식인들의 믿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옹정제’(2001·이산)는 ‘한줌 밖에 안 되는’ 오랑캐가 세운 청이 267년 동안이나 중원의 주인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비결을 보여주는 책이다. 만주족의 지도자들은 성실하고 인내심이 강할 뿐 아니라 공동체에 바치는 희생정신이 뛰어났다. 황위 계승을 놓고 내분이 있었지만 일단 황제가 정해지면 군말 없이 승복했다.
옹정제는 근면하고 열정적인 황제였다. 강한 자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엄격했지만 힘없는 백성들에게는 온몸을 던져 보호하려 했다.
그는 민심을 파악하려고 모든 지방관들로부터 주접(奏摺)이라 불리는 민정 보고서를 받았다. 그것을 낱낱이 결제하고, 그 내용을 국정에 반영하기 위해 13년 동안 매일 밤 12시에 잠들고 새벽 4시에 일어났다.
또한 겉으로는 만주족의 무력에 굴복했지만 속으로는 ‘오랑캐’라고 업신여기고 있던 한족 지식인들을 제압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저자는 이 ‘양심적인’ 황제의 처절한 노력을 찬양하지만 동시에 ‘독재자’ 옹정제의 근원적인 한계도 명확히 짚어낸다. 13년에 걸친 옹정제의 ‘개혁 드라이브’도 뿌리깊은 관료제의 병폐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옹정제 사후 관료들의 반격이 시작되고, 청은 서서히 혼란 속으로 빠져들어 갔던 것이다.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일인 통치’에만 매달린 정치의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여전히 ‘개혁’이 화두인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책이다.
(서울대 규장각 특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