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함부로 볼 수 없는 곳이 우리 몸에 있어요. 바로 속옷 속의 내 몸, 가슴과 잠지랍니다. 여러분이 커서 아기를 만들 소중한 곳이지요.”
올해부터 유치원 학생들은 ‘눈높이’에 맞춰진 구체적인 성교육을 받게 된다. 또 고교 졸업 때까지 단계별로 교육을 받게 된다.
교육 내용도 이전처럼 ‘순결을 지키려면…’ 식이 아니라 사회 변화를 반영해 적극적인 성폭력 예방이나 피임 등으로 크게 바뀐다.
교육인적자원부는 22일 ‘성교육 활성화 지침’과 성교육 관련 프로그램 및 교사용 지침서를 일선 교육 현장에 전달했다.
어떻게 가르칠지 자신이 없는 교사들을 위해 교육부가 지침서까지 만들어 성교육을 강조하기는 처음이다. 고교생 10명 가운데 1명이 성경험이 있고 성폭력 피해자 10명 가운데 3명 이상이 20세 이하 청소년이라는 현실에 뒤늦게나마 대처하기 위한 조치다.
▽성교육, 어떻게 바뀌나〓유치원 과정에서는 ‘아기가 어디서 생길까’와 같은 보편적인 궁금증 풀기에서 시작해 ‘좋은 느낌과 싫은 느낌 구분하기’ ‘싫은 느낌이 들었을 때 싫다고 이야기하기’ ‘계속 싫은 느낌이 들 때 도움 청하는 법’ 등 성희롱 대처법을 ‘역할놀이’를 통해 배우게 된다. 설거지하는 아빠, 비행사가 된 엄마 등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은 ‘포경수술이 왜 필요한가’ ‘몽정 후 대처방법’ ‘생리대 고르는 법’ ‘각국 결혼 예식’ ‘이성 친구를 사귀는 법’ 등 진전된 내용을 배운다.
중고교에서는 ‘성교 후 응급 피임법’ ‘질외사정법’ ‘월경주기법’ 등 구체적 피임법부터 ‘모성은 본능인가’ ‘성상품화와 포르노’ ‘예술과 외설’ ‘청소년 매매춘’ ‘양성 평등적 사회’ ‘원조교제에 관한 처벌’ 등 성문화와 성윤리에 법적인 문제까지 망라해 배운다.
▽학생 학부모 교사 반응〓대다수 학생과 교사들은 “현실적으로 필요하다” “때늦은 감이 있다”며 찬성했다. 하지만 일부는 성교육의 부작용을 우려하기도 했다. 서울 반포중 1년생 김벼리양(13)은 “‘그 상황’과 마주쳤을 때 현명하게 행동하려면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학생 자녀를 둔 주부 이은하(李銀河·37·경기 군포시 산본1동)씨도 “학교에서 성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면 청소년들의 왜곡된 성문화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개된 장소에서 민망한 얘기를 어떻게…”라는 반응도 많았다. 서울 Y초교 이모교사(50)는 “성교육이 필요하지만 몽정 자위 등의 단어를 꺼낼 자신이 없다”면서 “성교육이 오히려 성문제를 ‘부추기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성수중 3학년 장모군(14)도 “이미 알만큼 아는데 피임법을 꼭 학교에서 배워야 하느냐”고 말했다.
▽전문가들 의견〓최영애(崔永愛)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10대 미혼모와 성폭력 피해자가 증가하는 사회현상을 치유하려면 청소년들에게 성에 관한 건전한 가치관을 심어주는 동시에 기능적 성교육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세대 조한혜정(趙韓惠貞)교수는 “성을 억제해야 하는 것으로 보기보다 타인과의 친밀감의 표현이자 의사소통의 방법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아가는 시기에 교육부 조치는 적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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