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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열며]김갑수/개탄이 넘치는 사회

입력 | 2001-03-25 19:13:00


온 세상에 개탄, 개탄이 넘쳐난다. 조개탄, 갈탄 같은 석탄 종류가 아니라 못마땅하게 여기어 탄식함 으로 풀이되는 개탄이 직장에서 술집에서 통신공간에서 어디서나 차고 넘친다. 개탄이 개탄을 부르고 욕설과 비아냥으로 무성생식하여 장마철 집 잃은 개처럼 거리를 쏘다닌다.

개탄은 아무나 한다. 정치인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며 휴, 나라가 걱정입니다 라는 스케일 큰 중고생의 꾸지람이 통신 게시판을 장식하고, 토종 민족주의자들의 유구한 외세비판에 뒤질세라 한국인의 몰상식을 개탄하는 신흥 서유견문파들의 목청도 드높다. 텔레비전에 나와 도덕의 타락을 개탄하는 것이 본업으로 보이는 어떤 철학교수는 도무지 지칠 줄도 모른다.

주로 언론이 하루하루 던져주는 먹이감을 좇아 널을 뛰는 개탄의 종목은 코스닥 이상으로 다양하고 등락이 심하다.

▼성찰없이 비난만 쏟아부아▼

지지부진한 구조조정을 개탄하는 목소리에 비정한 근로자 해고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포개지고, 굶주린 북녘동포를 방관한다는 정부비판에 일방적으로 퍼주기만 한다 는 개탄이 겹쳐진다. 교육이 문제고 환경이 문제고 청소년이 문제고 요즘 여자 들이 문제고… 넘치는 게 개탄이다 보니 가락이 실리고 박자가 붙어 이 사람 저 사람 하는 말이 엇비슷해 보이고 특히 동원되는 용어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이 닮아있다. 간혹은 특정인이 말을 하는 것인지 도식화된 개탄이 스스로 재방송을 하는지 헷갈리기도 한다.

모든 개탄의 공통점은 표적이 외부를 향해 있다는 점이다. 자기를 향해 못마땅하게 여기어 탄식하는 일은 보통 반성 한다는 표현을 따로 쓴다. 자기를 배제시킨 개탄은 그러므로 이해도 용서도 제어도 없이 갈 데까지 가서 제풀에 지쳐야 그친다. 그리고 내일 또 내일 종목을 바꿔가며 반복된다. 개탄하는 입에는 별다른 책임감도 아픔도 따르지 않는다.

그것은 장점도 단점도,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아니다. 다만 성찰의 대상일 뿐이다.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이 남긴 이 말이 한동안 문인들 사이에 유쾌한 유행어가 됐던 적이 있다. 삐딱하게 새기자면 황희 정승식 처세술이거나 약삭빠른 양비론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강조점은 어디까지나 성찰 에 있는 말이다. 타인의 행위에 대해 어찌 그리도 쉽사리 장단점을 파악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겠는가. 미처 성찰할 틈이 없어서 옥스퍼드 사전에 세 번째로 오른 한국말이 빨리빨리 라지만 그 재빠르고 거친 단정과 그에 이어지는 개탄의 소리들은 현실의 겉면만 부산하게 떠돌다 스러지고 만다.

개탄을 일삼는 순간 낡는다. 늙음은 원숙으로 가는 길이 있지만 낡음은 폐품 처리장이 갈 길이다. 낯선 사람과도 한 다리만 걸치면 아는 사람이 되듯 세상일에 한 겹만 둘러 생각하면 자기 자신도 가담되어 있는 법. 자기가 가담해 저지른 일에는 사태의 양면이 두루 보이는 법이다. 이런 면 저런 면이 함께 고려된 임계선상에서 고민하는 느린 모습이 성찰을 부른다. 사태에 동참한(혹은 했다고 생각하는) 쪽에서 고민과 성찰을 담당하고, 주로 바깥을 떠도는 쪽에서 개탄 또는 비아냥의 형식으로 감정배설을 일삼는다. 그 문제에는 내 탓 도 들어있다고 자임하는 세계는 힘겹고 지둔하지만 변화의 활력이 있는 반면, 바깥에 서서 팔짱 끼고 바라보는 세상은 낡고 한가롭고 시종여일하게 흘러간다.

▼변화의 원동력은 '내 탓' 자각▼

현실에 대한 냉엄한 비판의 담론은 우리 사회를 활력 있게 키워온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정치 민주화와 경제위기가 함께 온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 사회는 만인의 만인을 향한 황폐하고 무절제한 개탄과잉 증상을 키워온 게 아닌가 싶다. 흡사 좋았던 과거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듯한 말들이 무성하지만 도대체 언제 적 과거와 비교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지금 못마땅한 세상에 대한 가장 손쉬운 대응 방법은 소리 높여 비난하고 개탄하는 일이다. 하지만 손쉬운 일에는 그만큼 보수도 적게 따르기 마련이니 애석한 일이다.

김갑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