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빠리에서 살 때 일이다.
시내 집 값이 비싸기 때문에 빠리에서 기차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교외에서 살았다. 그런데 기차역에는 표 파는 사람만 있었지 개찰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표가 없어도 쉽게 기차에 올라 탈 수 있었다. 물론 기차가 달리는 중간에 가끔 검표원 7-8명이 한꺼번에 차내로 올라와서 차표검사를 하기 때문에 한 달 내내 차표 없이 안심하고 다닐 수는 없다.
한 번 차표검사에 걸리면 한 달 내내 성공적으로 무임승차하여 번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이 벌금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도 장난 삼아 몇 번 무임승차를 시도해보았다. 성공했을 때의 그 짜릿함보다 한 시간 내내 마음 졸이는 불안감이 너무 컸기 때문에 곧 정직한 인간으로 되돌아왔었다.
아예 한 달치 표를 끊고 다니니 매우 편리했다. 개찰이 필요 없으므로 한 달에 한 두 번 만나는 검표원에게 그냥 표를 보여 주기만 하면 된다. 기차를 내 것처럼 타고 다닌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 표 한 장으로 버스나 지하철도 마음대로 탄다. 운전기사도 버스를 타는 승객이 차표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에 비해 우리 나라는 어떠한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절대로 승객을 열차 출발 5분전까지 플랫폼에 내려보내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줄을 서서 일일이 개찰을 받아야 한다. 전국의 수많은 철도역에는 이 일을 하기 위해 수많은 철도청 직원들이 있다. 그 직원들을 유지 관리하기 위해서 그만큼 철도청에서는 그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철도청이 적자일 수밖에 없는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버스운전기사도 일일이 승객이 내는 버스 값을 확인한다. 운전하기도 바쁜데 이런 일까지 하려니 버스 기사들이 승객들에게 친절할 수가 없다. 결국 그 비용에 대한 부담과 불친절은 승객들에게 돌아온다.
그러면 프랑스의 시스템과 우리의 시스템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을 믿는 사회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냐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만약 개찰 없이 기차에 오를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을 때 한 열차마다 10명 이상이 무임승차하고 있다면 그 시스템의 도입은 힘들다. 그러나 어쩌다 한 열차에 한 두 명이 무임승차로 적발되는 사회라면 사람을 믿는 시스템 운영은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럼 이제 인터넷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는 지금 사람을 믿는 인터넷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지 아니면 사람을 믿지 못해 고비용의 사회 시스템으로 가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인터넷 세계란 새로운 사회이며 새로운 문화이다. 새로이 건설하는 세상이므로 기존의 세상이 가지고 있던 사회 시스템에서 취하고 버려야 할 많은 것들이 있다. 기존의 세상에서 좋지 못했던 것들은 버리고 그 빈자리에는 새로운 세상에 어울릴 만한 것들로 채워야 한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이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느낌이다.
청소년에게까지 파고드는 음란 사이트, 해를 거듭할수록 숫자를 더해가며 악랄해지는 컴퓨터 바이러스, 자살을 상상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유도하는 자살 사이트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은행이나 기업정보의 해킹. 컴퓨터 바이러스만 하더라도 현재 전세계적으로 약 4만여 종의 바이러스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작년 한해 국내에서 새로이 발견된 것만 570여 종. 하루에 1개 이상의 새로운 바이러스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 된다.
이러한 인터넷의 부정적 요소들을 차단하는데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이제 바이러스 백신 하나쯤 가지고 있지 않은 개인용 컴퓨터가 없을 것이며 우리 아이들을 위한 음란물 차단 프로그램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부정직과 그로 인해 생겨난 불신으로 인한 비용이 인터넷의 긍정적 활동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더 커질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 인간들은 실세계에서 경험했던 불신의 대가로 사용된 고비용 사회 시스템을 또다시 인터넷 사회에서도 그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꿈꾸고 만들어가고 있는 인터넷 세상은 무엇을 위한 세상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