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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영산의 웅혼한 기상 '살아 꿈틀'

입력 | 2001-03-27 18:46:00


30여년 동안 산에 오르며 산을 그려온 ‘산의 작가’ 한진만(홍익대 동양화과 교수·53)이 98년에 이어 3년만에 8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4월4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상에서 열리는 ‘한진만전―한국의 영산’.

이 전시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영산인 금강산 마이산 청량산의 웅장하면서도 신령스러운 기운을 그린 35점의 작품들이 전시된다. 여기에는 500호 안팎의 대작 13점도 포함돼 있다.

작품의 소재가 된 산들은 모두 작가가 오랫 동안 산행해온 곳들. 작가는 산행을 하면서 바위와 나무와 바람과 함께 나눈 교감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다. 금강산 그림도 계속 마음에 두어오다가 99년 산행한 이후에야 화폭에 옮겼다. 그래서 이들 그림에는 작가가 사물의 실제를 성실하게 파악한 후 다시 자신의 내면에서 재창조한 이미지들이 담겨 있다. 보이는 대로 그린 실경(實景)이 아니라 이른바 ‘진경(眞景) 산수화’인 셈이다.

특히 그는 영산들 중에서도 마이산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그 계기는 80년 그가 군산대 교수로 재직할 때 찾아왔다.

“밤에 군산에서 진안으로 가면서 우연히 바라본 달빛 아래 마이산의 모습이 한 폭의 수묵화 같았습니다. 어느 한 순간 어둠 속의 마이산과 석탑에서 감동적인 조형을 발견하게 된 것이죠. 생명의 소리도 들을 수 있었어요.”

이번 마이산 작품들 중에는 웅장한 숫마이산과 그 아래 돌탑들이 둘러싸고 있는 조그만 절을 대조적으로 그린 작품 ‘은수사(銀水寺)’가 압권이다. 숫마이산이 올려다보이면서 동시에 은수사는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특이한 구도로 그림 전체가 역동적이다.

또 먹의 농담도 보통 그림과 정반대로 배경의 산이 진하고 앞의 절이 연해 자연의 힘이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금강산 작품들 중에서는 만물상의 바위들이 마치 판소리 장단에 춤추 듯 돌아가는 모습을 하늘에서 내려다본 구도로 그린 ‘만물상률(萬物相律)’ ‘금강률(金剛律)’ 등이 인상적이다.

독창적인 조형세계를 구축하려는 시도 못지 않게 그는 물감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실험을 해왔다.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채취한 황토를 안료 대신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 주황색 붉은색 황금색 등 다양한 황토들을 먹물과 적당히 혼용, 자칫 단순해지기 쉬운 화면에 다양성을 불어넣고 있다.

우리 나라 영산(靈山)들의 웅혼한 기상이 기운생동하는 필묵으로 펼쳐지는 그의 그림들을 보면서 관람객은 정신이 번쩍 들지도 모를 일이다.

jky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