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국에 온지 2년이 다 되었다. 1993년 대학에 입학해서 한국어를 전공할 때부터 지금까지 한반도와 인연을 맺은 지는 8년이 되었다. 한국은 기후, 건물, 농산품, 사람의 생김새까지 중국과 흡사해서 처음부터 낯선 감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유독 한 가지만은 한국에 살면 살수록 더욱 신기하고 뚜렷한 한국만의 특징으로 느껴진다. 그것은 바로 한국사회 곳곳에 뿌리깊게 스며들어 있는 유교문화와, 그것이 현대생활과 이루어내는 독특한 조화다.
▼유교사상 본토보다 잘 유지▼
얼마 전에 아주 인상적인 일을 겪었다. 시어머님이 정년퇴직을 하고 한국에 놀러오셨다. 계시는 동안 나와 농담도 많이 하고 서로 팔장을 끼고 쇼핑도 함께 했다. 쇼핑을 하러 갈 때마다 여점원들은 엄마냐고 물어보았다. 내가 시어머니라고 대답했을 때 그들이 놀라는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다. "어머, 시어머님이랑 그렇게 다녀도 돼요?"
한국에서 내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부부 중 누가 집안일을 하느냐"는 것이다. 내가 주로 한다고 대답하면 한국분들은 잘 믿지 않으려고 한다. 그들은 "중국에서는 가사일을 남자가 많이 한다는데…"라고 말하곤 한다.
중국인은 대부분 맞벌이 부부이고 남편이 집안일를 도와주지 않으면 아내 혼자서 감당하지 못하니까 가정일은 아내가 주로 맡되 남편이 부엌일을 포함해서 많이 도와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온 이후 내 남편이 집안일을 돕는 경우는 갈수록 드물어지고 있다. 가끔 나의 요청으로 마지 못해 가사일을 하게 되는데 그 때마다 반드시 아파트 베란다 창문을 굳게 닫고 한다. 남편 왈 "맞은 편 집에 사는 한국분들이 보면 쑥스럽잖아". 남편은 거의 한국인이 다 되었다.
나는 한국 TV에서 드라마를 즐겨 본다. 드라마 속의 가정에서 할아버지나 아버지는 절대적 권위를 갖고 있는 최고통치자 이고 자식들은 어른 앞에서 꼼짝도 못하며 며느리는 시부모님 앞에서 항상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 "예, 아버님" "예, 어머님"이라고만 말하는 것 같다. 신기하게도 요즘 이런 한국 드라마는 중국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다. 드라마를 통해 볼 수 있는 한국 사회의 가정윤리와 인간관계는 중국인들에게 한편으로는 너무 익숙하고 친근하면서도 동시에 멀고 먼 옛날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중국인들은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신기, 감명, 향수가 섞인 일종의 복잡한 정서를 느낀다.
그런데 한국은 이와 전혀 다른 또 하나의 모습이 있다. 그것은 바로 누구나 볼 수 있는 현대화된 한국이다. 80년대부터 아시아의 네 마리 용 가운데 하나로 불려왔고 지금은 이미 현대화가 거의 완성됐다. 서울거리에는 높은 빌딩들이 즐비하고 승용차들이 줄지어 달리고있다. 오늘의 한국사람들이 가장 잘 쓰는 단어가 '글로벌화' '정보화' '지식기반경제' '벤처' 등이고, 각계의 유능한 인재들이 주로 서양에서 공부하고 온다. 이처럼 국제화 현대화를 지향하는 한국에 유교문화와 유교사상이 공자(孔子)의 고향인 중국에서보다 더 강고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내가 항상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유교전통이 왜 한국에 유독 많이 남아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한가지 분명해 보이는 것은 유교전통이 아직은 한국 사회에 유무형의 이득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화를 이룬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한국 사회가 훨씬 안정적이고 인정미가 있다. 어른은 어른답고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다워야 한다는 묵계로 인해 사회 전체가 하나의 큰 가족 같고 질서정연하다는 느낌을 외부인에게 준다. 한국에서 가정이 안정돼 이혼율이 낮은 것과 형사사건이 적은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사회 안정에 한몫▼
현대화와 유교전통은 한국인의 생활과 의식 속에 비교적 조화롭게 공존하면서 한국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봐도 이는 정말 이채로운 일이 아닐수 없다.
위빙(주한 중국대사관 주재관)
[필자 약력]1974년 중국 산둥성(山東省)에서 출생해 97년 베이징대 동방학부를 졸업했다. 재학 중에 교환학생으로 북한의 김일성종합대학 어문학부를 수료했다. 97년 8월 중국 외교부에 들어가 아주국 근무를 거쳐 99년 3월부터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