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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음악속의 과학]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매킨토시'

입력 | 2001-03-28 18:39:00


예술적 창조성은 과연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일까?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산타크루즈 소재) 음대 교수인 데이빗 코프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스스로 작곡을 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 과학계와 음악계에 오랫동안 창조성 논쟁을 불러 일으켜온 장본인이다.

뛰어난 현대 음악 작곡가이기도 한 그가 처음 작곡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 것은 80년대 초 무렵이었다.

버지니아주 리치몬드 대학으로부터 작곡을 의뢰 받았으나, 작곡 능력에 한계를 느끼고 자신의 창작 활동을 도와줄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에 착수했다.

그가 만든 프로그램의 이름은 EMI (Experiments in Musical Intelligence, ‘음악적 지능의 실험’의 약자).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레코드 회사 EMI를 패러디한 이름이다.

코프 교수는 작곡가가 작곡을 하는 과정을 EMI의 알고리듬에 그대로 담았다.

그는 작곡을 완전히 새로운 소리 패턴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아니라 예전에 들었던 소리나 멜로디를 자신의 스타일로 변형하는 과정이라고 여겼다.

그는 EMI로 하여금 유명 작곡가들의 음악을 분석해 그들만의 독특한 패턴을 찾은 후, 그 패턴들을 이용해 새로운 주제에 대해 작곡을 하도록 했다.

87년부터 본격적인 작곡 활동에 들어간 EMI는 지금까지 바하, 모차르트, 스트라빈스키 등 위대한 작곡가의 패턴을 분석해 그들과 비슷한 패턴의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었다.

특히 모차르트 교향곡 41개를 분석해 모차르트의 작곡 스타일을 완전히 배운 다음, 42번째 교향곡을 작곡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매킨토시 컴퓨터가 들려주는 이 곡은 마치 모차르트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그의 음악을 닮아, 신문들은 EMI를 ‘볼프강 아마데우스 매킨토시’라고 대서특필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이 작곡가의 음악보다 EMI의 음악을 더 아름답다고 느낀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에게 바하의 음악과 EMI가 작곡한 변형된 바하 음악, 그리고 다른 작곡가가 바하 스타일로 작곡한 음악을 차례로 들려준 결과, EMI의 곡이 가장 아름답다고 설문에 답한 것이다.

컴퓨터가 작곡한 음악이 인간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예술을 인간만의 고유한 활동이라 여겨온 오랜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고 있다.

EMI가 작곡한 음악은 과연 예술일까, 아니면 그저 우연히 아름답게 들리는 소리의 나열일 뿐일까? 아직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jsjeong@complex.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