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6년이 속절없이 흘렀다. 85년 9월21일 오전 10시 평양의 고려호텔. 35년 만에 만난 아버지를 얼싸 안은 이재운(李在運·66) 변호사는 “모두 하느님의 은총”이라며 감격해 했다. 뜻밖에도 아버지는 “지도자 동지의 은총”이라며 아들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6·25전쟁 당시 14세이던 3대 독자를 피란 보내며 “우리 집안 종자만큼은 꼭 살려달라”고 하느님께 간구했던 아버지. 그때 그 기도의 힘으로 이렇게 살았다고 통곡이라도 하려 했건만. 이변호사는 서울로 돌아온 후 6개월여간 음식도 넘기지 못하고 불면증에 시달렸다.
‘왜 나와 우리 가족만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나’ ‘믿는 사람만 천당에 간다면 우리 아버지 같은 체제의 희생자들은 천당에 갈 수 없는가’ ‘돌아가실 때도 아들 생각에 눈을 못 감았다는 우리 어머니는 한번도 하느님을 믿은 적이 없는데 지금 지옥에 계시나’.
혈혈단신 월남해 중학 중퇴 학력으로 사법시험에 합격, 성공한 법조인의 길을 걷기까지 오직 절대자에 의지하며 앞만 보고 달려왔던 삶. 모든 것이 의심과 혼란으로 바뀌었다.
이변호사는 그때부터 성경을 파고들었다. 94년부터는 변호사 업무도 모두 정리하고 아예 지방으로 내려갔다. 한 줄 한 줄 새겨가며 통독한 것이 200여회. 서양사 동양사도 두루 훑었다. 의문을 풀고 싶었고 해답을 찾고 싶었다.
오랜 방황 끝에 이제 그는 나름대로 성경에서 해답을 찾았다고 한다.
‘이 짧은 생에 하느님을 알지 못하거나 예수를 믿지 못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영벌(永罰)에 처하지 않는다.’
그가 내린 결론은 언뜻 교리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대목이 적지 않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결국 하느님은 ‘사랑’이며 중요한 것은 사후세계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라는 것을 뼈에 사무치게 깨달았다고 한다.
이변호사는 그런 생각을 묶어 이번에 ‘인간의 사후세계’란 책으로 펴냈다. 이산가족 상봉이 가져온 아픔과 절망을 영혼의 힘으로 치유해 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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