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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핼로란 칼럼]미국의 의도 대만정책서 읽어라

입력 | 2001-03-28 18:56:00


북한과의 관계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는 한국은 대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새로운 미국 행정부가 아시아에 대해 어떤 접근방식을 취할 것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중대한 사태에 대만이 연루돼 있기 때문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난주 워싱턴에서 첸치천(錢其琛) 중국 부총리와 회담을 갖고 새로운 미―중 관계를 논의했다. 이날 회담에서는 중국이 여전히 자국의 영토임을 주장하고 있지만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하는 대만의 운명이 핵심 현안으로 다뤄졌다.

▼한-일 등에 똑같이 적용▼

첸 부총리는 중국의 주장을 되풀이하며 중국정부는 대만에 대한 영토권을 확보하기 위해 무력을 동원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고, 부시 대통령은 어떠한 해결책도 평화적이어야 하며 대만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기존 원칙을 반복했다.

현재 가장 급박한 이슈는 부시 대통령이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를 승인할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중국은 부시 대통령에게 대만에 대한 어떠한 무기 판매도 승인하지 말 것을 촉구해왔으며 첨단무기 판매는 중국의 군사력을 자극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 문제는 미국이 과연 중국의 공격으로부터 대만을 보호할 의사가 있는지 여부를 시사하는 것이다.

대만 문제에 대해 부시 대통령이 내리게 될 결정은 한국 일본 필리핀 태국 호주 등 미국이 안보협약을 맺고 있는 다른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에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기 때문에 한국에도 직접적인 이해가 걸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직면해 한 발 물러서는 조짐을 보인다면 아시아 지역에서의 미국의 지위는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안보조약을 맺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은 더 이상 미국에만 의존할 수 없으며 중국과의 우호관계 강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대만의 지정학적 위치 또한 한국의 안보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상당량이 실린 유조선이 중국이 영해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를 지나온다. 대만은 남중국해에서 한반도로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에 위치해 있다. 적대적인 중국이 이 중요한 바닷길의 숨통을 조이기라도 한다면 한국과 일본 미국은 끔찍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대만 문제는 여러 가지 다른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한국처럼 대만은 최근 10여년 동안 민주주의를 상당한 수준으로 정착시켜 왔다. 미국이 떠오르는 민주주의 국가를 포기한다면 이는 미국의 기본적인 원칙에도 위배되는 것이며 아시아 지역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의문시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미국이 지켜온 또다른 원칙 중 하나는 때때로 일관되지 못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바로 자결주의 원칙이다. 미국은 최근 몇 년간 중국―대만 문제에 대해 어떠한 해결책도 대만 국민의 동의를 받아 추진돼야 한다고 밝혀 왔으며 이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환영하는 바였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대만에 경제적인 이해관계도 가지고 있다. 미국이 이런 대만을 위험에 빠뜨린다면 한국 등 다른 지역에서 경제적 이해관계를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미국의 대(對)대만 수출액은 중국에 대한 수출보다도 크다. 미국은 또 대만으로부터 첨단제품과 부품을 많이 수입하고 있다. 대만으로부터의 수입에 차질이 빚어진다면 미국경제도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 내 일각에서는 인구 2300만명의 섬나라(대만)와의 관계가 13억명의 대국(중국)과의 냉전적 적대관계의 위험을 무릅쓸 만큼 중요한 것이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경제적 이해 얽혀 포기 힘들 것▼

그러나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 전 총리가 1938년 나치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에게 체코슬로바키아를 정복할 수 있도록 길을 내준 뒤 하원 연설에서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시켰던 때를 상기해보자. 체임벌린 전 총리는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하는 먼 나라의 다툼 때문에 방독면을 쓰고 참호 속에 숨어 있어야 한다면 이는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라고 말했다. 이때 연설을 듣고 있던 윈스턴 처칠은 혼잣말로 “정부는 수치와 전쟁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이미 수치를 선택했으니 앞으로는 전쟁을 치러야 할 것이다”라고 비난했다고 한다. 처칠의 생각은 옳았다.

미국과 한국,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이 에피소드에서 교훈을 얻기를 바란다.

(전 뉴욕타임스 아시아지역특파원·현 아시아문제 전문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