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국가 가운데 한국 만큼 남성중심의 권위주의적 사회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상황이 이러하니 반대로 여성들의 사회·가정내 지위가 남성보다 상대로 낮아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여성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사회참여가 늘어남과 동시에 여성인권 의식이 향상됨에 따라 불평등한 사회제반 요소들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
한국여성들의 권익보호와 향상을 위한 최일선 야전사령부 역할을 맡아온 곳이 바로 한국여성민우회(이하 여성민우회)이다.
1987년 9월 "남녀평등한 민주사회의 실현'을 목적으로 설립된 한국여성민우회의 탄생은 당시 노태우 정권의 민주화 선언으로 촉발된 민주화 열풍과 무관하지 않다.
바로 시대적 조류이자 사명이었던 민주화의 열망이 고스란히 남녀의 문제에 전이된데서 그 시작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민주화와 함께 남녀 사이의 민주적이고 평등한 관계 재정립을 요구했던 것이고 그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서 여성민우회가 탄생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는 윤정숙 사무처장은 "민우회는 그 이전부터 여성의 힘을 하나로 모으고 대중화하려고 노력해 왔다"고 태동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면서 윤 사무처장은 "83년을 전후한 시점에 진보적 여성단체가 있었지만 이는 활동가·명망가 중심의 운동으로 대중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다"며 "6·29민주화선언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대중의 참여, 특히 여성의 참여를 요구하는 여성민우회의 탄생을 더욱 촉발한 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2000년 여성민우회가 전개한 캠페인 '참여하는 여성이 아름답다'는 캐치 프레이즈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민우회는 철저하게 참여하는 여성운동을 지향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모든 정책결정과정에서 그간 여성이 철저히 소외돼 왔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결국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할때 남녀평등의 시대, 인간중심의 지속가능한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윤 사무처장은 "여성들은 그동안 동원의 대상·들러리에 불과했다"며 "참여와 결정의 과정에 여성의 의견이 반영돼야 주체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여성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따라서 여성민우회는 함께가는 여성운동을 지향한다.
이를 통해 보다 많은 여성의 참여를 유도하고 이들의 작은 실천을, 세상을 바꾸는 큰 힘으로 만들어내려고 노력해왔다.
이와 함께 '생활속 여성운동'을 지향한다. 가정·직장·학교·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의제를 발굴하고 이의 해결과정에 여성이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남녀평등의 사회를 구현해 나가자는 취지인 것이다.
그렇게 "6000여명의 회원이 10개 지부에서 여성권익 회복의 멀고 먼 여정속에 합류,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고 윤 사무처장은 민우회 활동을 설명했다.
여성민우회는 다양한 영역에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민우회가 활동하고 있는 영역은 크게 여섯분야로 살려볼 수 있다.
여성의 평등한 노동권과 경제세력화, 지구와 미래를 생각하는 여성환경운동, 건강하고 성차별 없는 미디어, 바람직한 가족과 성문화, 여성의 정치세력화, 대안적 생활문화의 형성 등에서 여성의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 또 지역에서도 많은 소모임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윤 사무처장은 "다양성 확보 노력에도 불구하고 회원들로부터 눈높이를 낮추라는 요구를 많이 받는다"고 아쉬워했다.
백화점식 운영이 아니냐는 질문에 윤 사무처장은 "창립 초기 대중의 많은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시민단체가 전무했었다"며 "그런 면이 없지 않지만 일정기간 동안은 다양한 문제를 통해 대중의 힘을 모으는 작업이 좀더 진행돼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난 15년간 우리 사회 변방에 놓여있던 여성권익 향상의 외길을 변함없이 걸어온 여성민우회는 그동안 사회 각계각층에서 여성지위 향상을 위해 열정을 쏟아 붓는 많은 여성인사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초대 여성부 수장인 한명숙 장관을 꼽을 수 있다. 한명숙 장관은 단체 설립 초기인 1989년 부터 1994년까지 한국여성민우회 2대 회장을 역임했다.
그 밖에도 서울시의회에서 이금락, 김은경 의원이 활동하는 등 전국 지자체에서 여성권익 향상과 남녀평등의 민주사회 구현을 위해 맹렬히 일하고 있다.
윤 사무처장은 "남녀평등의 사회구현을 이루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아직도 많은 것이 현실"이라며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이 서유럽이 70%인데 반해 한국은 50%를 전후하고 있는 점이나, 아직도 군·공직·직장·종교내 성폭력이 존재하고 있는 점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김시영/월간 경실련 기자
(이 글은 월간 경실련 3월호에서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