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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자꾸만 멀어져가는 내 친구야!"

입력 | 2001-03-29 18:49:00


곽경택 감독의 ‘친구’는 추억을 되살려내는 영화다. 1976년부터 1993년을 관통하는 갈색톤 화면에는 흰 분말연기를 뿜는 소독차, 이소룡의 쌍절곤, 검정색 교복, 실내 롤러스케이트장 등 그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다양한 소품들의 경연이 펼쳐진다. 여기에 짠내 물신한 강한 억양의 부산 사투리 대사들은 추억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바퀴와 같은 음향효과를 만들어낸다.

이런 노스탤지어에는 분명 낭만이 개입한다. 조오련과 바다거북 중 누가 더 빠를지에 대한 입씨름, 첫 키스의 짜릿한 추억, 수백명과 맞대결을 펼친 패싸움 등은 관객들로 하여금 흐뭇한 웃음과 함께 젊은 시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친구’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런 낭만을 압도하는 우직한 힘을 갖췄다. 냉혹한 현실에 대한 묘사가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또래의 맏형 같던 준석은 히로뽕과 함께 밑바닥까지 추락하기도 하고 말없이 우직하던 동수는 ‘의리가 뭔지 아나. 이게 바로 의리인기라’하며 보스가 내놓는 수표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는 무엇보다 영화속 에피소드가 1990년 부산을 떠들썩하게 했던 국제나이트클럽 살인사건 등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유오성과 장동건이 뿜어내는 남성미 가득한 연기도 일품이다. 탁한 목소리로 되새김질 하듯 대사를 씹어내거나 ‘태양은 가득히’의 알랑 들롱 뺨치게 비정한 눈빛을 만들어낸 장동건의 변신은 경탄거리다. 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새롭게 창조해낸 유오성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는 분명 한 경지를 이뤄냈다. 31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confetti@donga.com

[줄거리]

폭력조직의 두목을 아버지로 둔 준석(유오성), 가난한 장의사의 아들 동수(장동건),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상택(서태화), 밀수업자를 부모로 둔 중호(정운택)는 죽마고우다. 어릴적 그들은 서로의 가정환경을 이리저리 재본다는 것은 생각도 못한채 그저 사람냄새가 좋아서 어울린다.

고등학교에 진학해 그들은 다시 만난다. 상택이 공부로 전교 1, 2등을 다투는 모범생이 된 사이, 준석과 동수는 주먹으로 전교 1, 2등을 차지하는 싸움꾼이 돼있었다. 서로가 몸담은 현실은 너무 달랐지만 어린 시절 추억이란 공통분모로 까불거리기 좋아하는 중호와 함께 넷은 다시 어울린다. 어느날 단체관람 영화를 보러간 그들은 다른 학교 학생 전체와 패싸움을 벌이게 되고 몰매를 맞던 상택을 보호하기 위해 물불 안가리고 덤벼들었던 준석과 동호는 퇴학을 당한다.

모범생이란 이유로 유기정학에 그친 상택은 두 친구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그들 사이를 가르고 있던 강을 건너려 하지만 준석은 가슴을 열고 막아선다. “이제부터 니(너)는 니(너)처럼 살아라. 나는 내(나)처럼 사께(살께).”

세월이 흘러 상택과 중호는 대학생이 되지만 준석과 동수는 폭력조직에 몸을 담는다. 그리고 자꾸만 멀어져가는 서로를 안타깝게 돌아보면서 비극적 운명을 향해 치달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