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거대한 산 '老子'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전체 내용이 글자 수로 5000여자에 불과한 ‘노자(老子)’에 대한 주석은 지금까지 중국에서 나온 것만 1000종이 넘는다. 지난해 TV 강의의 교재로 나왔던 김용옥씨의 ‘노자와 21세기’(통나무)나 이 책에 시비를 걸었던 이경숙씨의 ‘노자를 웃긴 남자’(자인)도 이 거대한 주석의 ‘산(山)’위에 돌멩이 하나 얹은 데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번역 출간된 ‘율곡 이이의 노자’와 ‘홍석주의 노자’(이상 예문서원)는 관심을 기울일 만하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노자 주석이기 때문이다.
500여 년의 조선조 동안 노자 주석서는 박세당의 ‘신주도덕경(新註道德經)’, 서명응의 ‘도덕지귀(道德指歸)’, 이충익의 ‘담노(談老)’, 그리고 이번에 번역된 이이의 ‘순언(醇言)’과 홍석주의 ‘정노(訂老)’ 다섯 종에 불과하다. 조선시대의 ‘장자(莊子)’ 주석서가 한원진의 ‘장자변해(莊子辨解)’와 박세당의 ‘남화경주해(南華經註解)’ 두 종에 불과한 데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 1999년 ‘신주도덕경’을 ‘박세당의 노자’(예문서원)라는 이름으로 번역했던 김학목씨(건국대 철학과 강사)가 이번에 이이와 홍석주의 노자 주석서도 완역해냈다.
조선 유학자들이 당시 이단의 서적으로 지목돼 있던 ‘노자’를 굳이 주석한 이유는 요즘 ‘노자’를 다시 번역해 내는 사람들의 의도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노자’를 잘못 이해하고 있어 이를 바로잡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16세기 조선성리학 최고의 전성시대에 살았던 이이는 자신만만하게 주자학의 우주론과 인성론으로 노자를 재해석했다.
17세기 공리공론에 빠져들던 조선성리학의 폐단이 심화되던 시기의 박세당은 주자학의 형이상학적 사유 방식을 이용하면서도 노자의 질박함을 강조했다. ‘노자’를 통해 형식주의에 빠진 조선성리학의 폐단을 지적한 것이다.
19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홍석주는 노자 사상의 장점을 적극 인정하는 개방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기호학파의 적통(嫡統)을 이은 그가 인정하는 ‘노자’의 장점은 백성에 대한 사랑, 극기와 근신, 겸손한 자세 등 성리학에서도 중시하는 덕목들이다. 당시 사람들이 노자의 사상을 도피와 방종의 사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어 이를 바로잡기 위해 새로 주석을 했다는 것이다. 박세당의 노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조선시대 유학자의 노자 주석서 다섯 종의 완역을 시도하고 있는 옮긴이의 나머지 두 권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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