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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훈기자의백스테이지]귀여운 악바리, 박정현에 대하여

입력 | 2001-03-30 18:55:00


지난 2월말 3집 활동을 마무리하고 미국으로 떠난 호소력 짙은 목소리의 여가수 박정현. 미국 시애틀의 부모님 집에서 머물고 있는 그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의 한 측근은 "정현이가 또 다른 꿈을 이루기 위해 휴식도 포기한 채 이를 악물고 있다"며 "UCLA 연극영화 전공을 포기하고 편입 시험에 합격한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 영문학과 학생으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정현은 기자와 만나 "원래 습작으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해 본격적으로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영문학과로 가기로 했다"며 "가수 외에 훗날 후회가 없도록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뭐든 자신이 목표한 일을 해내고야 마는 고집스런 성격'의 박정현은 '귀여운 악바리'다. 작은 몸집에 한없이 순해 보이는 그를 성미가 강퍅하고 모진 사람으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정현은 96년 가수가 되기 위해 한국에 왔을 때 미국에서 나고 자란 탓에 모국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듬해 데뷔 음반을 낸 뒤 기자와 만났을 때도 그는 더듬더듬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말할 정도였다.

그는 "영어 알파벳으로 한글 표기를 한 것을 읽어가며 천신만고 끝에 녹음을 끝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박정현의 'PS I Love You'가 수록된 데뷔 음반을 들어보면 한국어 발음이 영어처럼 들릴 정도로 버터맛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 때 그의 악바리 정신이 발휘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모 방송국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박정현은 진행자로부터 "한국 사람이 어떻게 한국말을 그렇게 못하냐"며 타박을 받은 것이다.

이후 몇 개월 동안 박정현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숙소에서 두문불출하며 한국어 공부에 매달렸다. 국어책을 또박또박 읽는 연습을 하며 날밤을 새웠고 아무리 반복해도 늘지않는 한국어 실력에 홀로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였을까? 3집 'Naturally'를 발표한 뒤 기자와 만난 박정현은 발음이 한결 정확해진 모습이었다. 그는 "아직도 한국어로 노랫말을 쓰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은행 업무를 보거나 대화를 나눌 때 전혀 무리가 없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박정현의 고집스러움은 음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처음 데뷔했을 때 R&B 가수로 고정되는 것에 불만이 많았던 그는 2집 '몽중인'에서부터 자신의 색깔을 내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고스펠 음반을 발표할 정도로 흑인 음악을 가까이 했던 그는 대학 재학시절 즐겨들었던 포크 록, 펑키 등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장르를 가미하려 했다. 박정현이 드디어 '내 색깔을 찾았다'는 3집에서 발라드 외에 강한 기타 사운드를 가미한 록 음악을 선보인 것이다.

그의 걸출한 가창력은 R&B는 물론 하드록에도 썩 잘 어울렸고 음반 판매량도 30만장이 넘는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대중적으로, 음악적으로 인정받은 것에 고무된 그는 전국 투어에서 해드 뱅잉을 하는 여성 록커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가수로 또 영문학도로 자신의 꿈을 끝까지 일궈내려는 박정현을 지켜보면서 작지만 속이 알찬 젊음을 느꼈다.

황태훈 beetlez@donga.com

♬ 노래듣기

  - 아무말도 아무것도…

  - You mean everything to me

  - 힘내!!

  -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