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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교수의 한국사 새로보기]한민족의 형성

입력 | 2001-04-01 18:52:00


《그리 많은 여행을 해보진 않았지만 내 일생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여행은 미국의 네바다 사막이었다. 특히 사막 한가운데 있는 인디언 나바호(Navajo)족의 보호 구역에서 보낸 이틀은 내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등에 아기를 업고 머리에 광주리를 인 할머니의 모습은 1950년대 우리의 어머니와 너무 흡사했다. 보호 구역으로 들어갈 때 신분증과 소지품을 검색하던 인디언 출신의 감독관이 나의 여권을 보더니 “어머니의 나라에서 온 분”이라면서 반색하던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이 때 나는 우리 민족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까지 간 것일까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동서를 막론하고 어느 민족, 어느 국가에나 신화(神話)가 있기 마련인데 이 신화라는 것이 때로는 정확한 검증이나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신화들은 고정 관념으로 자리를 잡은 후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사실로 굳어지게 된다. 한국사에서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아마도 ‘단일민족’의 논리일 것이다.

▼글 싣는 순서▼

1. 한민족의 형성
2. 화랑과 상무정신
3. 첨성대의 실체
4. 최만리는 ‘역사의 죄인’인가
5. 김성일은 충신이었다
6. 성삼문과 신숙주
7. 서낭당에 얽힌 비밀
8. 당쟁과 식민지사학
9. 의자왕과 3000궁녀
10. 전봉준과 동학

우리 민족의 원류가 북방계와 남방계로 이뤄져 있다는 것은 학계가 다 잘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단일민족을 내세우고 있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아마도 현대사의 비극을 겪으면서 민족의 동질성과 민족적 역량을 결집시키기 위해 정치인이나 역사학자들이 이를 금과옥조처럼 내세웠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은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정확하게 말한다면 우리 민족은 북방계와 남방계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그 밖의 소수 민족으로서는 내침족(來侵族·외부에서 침략해 들어온 종족)과 귀화인의 네 종족으로 이뤄지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유전자를 따져 보면 적어도 35개 이상의 혈통으로 이뤄져 있다. 태초에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태어난 이후 그들은 동이 트는 곳을 향해 한없이 이주를 하다가 몽골 대륙에 정착했으며, 그들의 일부는 다시 동진을 하다가 외딴 남쪽으로 흘러 들어와 지금의 한민족을 이루었는데 이들이 곧 북방계 한민족이다.

한민족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들 북방계를 살펴보면 확연히 눈에 띄는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예컨대 엉덩이에 푸른 반점이 생기는 것은 다 알려진 일이지만, 그밖에도 북방계는 눈에 쌍꺼풀이 지지 않고 눈두덩이가 두꺼우며 뱁새눈(almond eyes)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한반도로 인구가 이동하던 2만 5000년 전에는 기온이 영하 50도까지 내려갔기 때문에 그들은 눈동자의 동상을 막기 위해 실낱같이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코는 펑퍼짐하고 광대뼈가 다소 튀어 나왔으며 모발은 굵고 뻣뻣하다.

북방계가 남하한 루트는 육로로 내려온 경우와 산둥반도 일대에서 출발해 서해를 건너 인천과 아산만(牙山灣)을 통해 상륙한 경우, 동해안을 따라 해로로 남하한 경우가 있다. 따라서 경상남도 북부 해안 지방은 남쪽 지방에 속하면서도 북방계가 자리 잡았으며 그후 남방계의 북상과 함께 혼혈이 이뤄졌기 때문에 이 곳은 남방계인지 북방계인지 구분하기가 가장 어려운 지역이다. 북방계의 남진 루트는 기이하게도 한국전쟁 당시의 피란길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남쪽으로 내려오지 않고 동쪽으로 계속 이주한 무리들은 얼음이 덮인 베링해협을 거쳐 미주 대륙으로 건너가 지금의 아메리칸 인디언이 되었고, 더 남쪽으로 내려간 종족들은 지금의 남미 인디오족이 되었다. 이들에게는 체형이나 얼굴 모습은 물론 북방계의 생활 습속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이를 테면 음식을 먹기 전에 고수레를 한다거나 세수할 때 푸드득거리며 뒷목까지 씻는 버릇이 그에 해당된다. 이러한 버릇은 몽골리안에게만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이다.

남방계는 이와 달리 눈에 쌍꺼풀이 지고 코가 오뚝하며 북방계에 비해 피부는 다소 검고 꺼칠하다. 우리는 길을 가다 일본인을 만나면 그들이 일본인임을 육감적으로 알아본다. 그러면서도 어떤 점이 일본인의 특징이냐고 물으면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선 남방계는 얼굴의 모습이 북방계에 비해 좁으며, 따라서 상대적으로 얼굴이 갸름해 보인다. 턱의 모습을 보면 북방계는 다소 넓고 모가 진 반면에 남방계는 하관이 빠르다. 이것은 육식을 주로 하던 북방 유목민족과 채식을 주로 하던 남방계의 진화 형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머리칼은 북방계에 비해 더 가늘거나 보드랍고 곱슬머리인 경우도 있다.

남방계와 북방계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체형이다. 북방계는 다리가 긴 반면에 상체가 다소 왜소해 보이고 손이 짧다. 기골이 장대한 듯하면서도 가슴이 좁은 체형은 북방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반면에 남방계는 손이 길고 상체가 발달해 어깨가 벌어졌으며 다리가 짧아 약간 안짱다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양 상태가 거의 같이 발달한 오늘날의 신세대에게서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앉은키는 일본인이 더 컸고 선 키는 북방계 한국인이 더 컸다. 초원을 달리던 북방계의 다리가 더 길고, 밀림에서 생활하던 남방계의 팔이 더 긴 것은 진화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남방계와 북방계를 구분하기 위해 더 긴 얘기를 할 필요가 없이 단적으로 말해서 정주영(鄭周永)씨와 박태준(朴泰俊)씨가 각기 북방계와 남방계를 대표하는 모습이다.

우리야 그들이 모두 한국인이거니 생각하지만 제3국인이 이 두 인물을 보고 같은 종족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일본의 총리를 지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와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가 동족이 아니듯이 정주영씨와 박태준씨는 전혀 다른 혈통의 한국인들이다.

북방계와 남방계의 이입은 전쟁에 의해 이뤄진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들 소위 내침족은 기왕에 터잡고 살던 사람들의 이주를 유발했다는 점에서도 인종의 혼혈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패잔병이나 잔류 병사들도 혼혈에 적지 않은 몫을 차지했다.

고대사에서의 전쟁은 접어두고라도 중근세 이후만 하더라도 거란의 침략, 몽골족의 침입,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 35년, 군정기와 한국전쟁 등을 통해서 수많은 혼혈이 이뤄졌다. 전쟁은 ‘원치 않은 임신’을 유발하기 때문에 더 많은 혼혈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혼혈의 특이한 현상으로는 옛날에도 귀화인이 있었다고 하는 사실이다. 귀화는 의도적으로 내한한 무리와, 바다를 표류하다 정착한 무리로 다시 나뉘어진다.

김해(金海) 김(金)씨의 시조인 수로왕(首露王)의 부인이 중국을 거쳐 들어온 인도계의 허(許)씨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며, 김해 수로왕릉의 문무상이 곱슬머리를 한 아랍계의 모습인 것도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덕수(德水) 장(張)씨는 아랍계 상인이 이 땅에 정착한 사례로서 그들의 체형은 한국의 토종과는 달리 기골이 장대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얼굴이 희멀겋고 달덩어리 같은 얼굴은 서방계이다.

화산(花山) 이(李)씨는 베트남의 왕족으로서 본국의 난을 피하여 떠돌다가 한국에 정착한 보트 피플의 후손들이며, 우록(友鹿) 김씨는 임진왜란 당시에 조선에 쳐들어왔던 일본인 장수 사야가 조선이 좋아 귀순해 사성(賜姓)을 받은 경우이다.

귀화인의 대종을 이루는 것은 역시 중국에서 들어온 성씨들이다. 예컨대 조선조의 명문 거족이었던 연안(延安) 이씨는 당나라의 군대가 고구려에 쳐들어 왔을 때 함께 온 장수 이무(李茂)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이 땅이 좋아 머물러 앉은 경우이며, 청해(淸海) 이씨는 여진족이고, 경주(慶州) 설(卨)씨는 위구르계의 귀화인이다.

현대 민족주의에서 이미 혈통은 대체로 부인되고 있으며, 역사적 운명의 공유(共有)와 일체감, 그리고 언어의 동질성을 민족의 본질로 삼는 것이 지금의 추세인 점에서 본다면, 혈통이 같거나 다름은 민족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인순이도, 할리(河一)도, 주현미도, 윤수일도 모두 우리가 보듬고 사는 세계화의 시대인데 더 이상 내 핏줄만을 따져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신복룡

[필자 약력]

△1942년 충북 괴산 출생 △65년 건국대 졸업 △77년 건국대 정치학박사(정치외교사 전공) △79년∼현재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85년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교수 △99∼2000년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