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우리의 희망이자 미래를 열어 가는 힘이다. 그러나 교육은 항상 우리 사회의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교육 현장의 파탄은 학생 학부모 교원 교육행정가 등 교육 주체들에게 현실을 타개할 의욕마저 잃게 하고 있다. 교육 주체들이 함께 돌파구를 마련할 때 교육은 진정한 희망이 될 수 있다. 동아일보는 당면한 교육현안에 대한 외국의 경험과 현장, 국내의 새로운 시도들을 찾아보는 ‘꿈과 희망의 기획’을 마련한다.》
▼글 싣는 순서▼
-1부 영재교육-
1. 미국
2. 싱가포르
3. 호주
4. 중국
5. 이스라엘
6. 한국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원더랜드 애비뉴 초등학교 1학년 과학시간. 20명의 학생들이 교사가 손에 든 비커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앤드루, 이 컵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컵안이 훤히 잘 들여다보입니다.”
“그래요, 안이 잘 보이는 걸 어떤 말로 표현하면 좋을까.”
“투명해요(transparent).”
철자법을 묻자 아이들이 큰 소리로 ‘t, r, a, n…’하며 큰소리로 외친다. 교사는 종이 필터에 붉은 색 사인펜으로 둥근 점을 찍은 뒤 물 속에 담그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물었다.
한 학생이 “점이 없어져요(disappear)”라고 대답하자 학생들이 깔깔거리며 일제히 손을 들었다. 제이크(7)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퍼지지 않을까요(spread)”라고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글쎄, 나도 모르겠는걸. 직접 물에 한번 담가 볼까.”
5분쯤 뒤 사인펜이 붉게 퍼진 필터를 보여주자 아이들은 매우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교사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배우게 한다. 가정을 세우고 실험을 통해 3학년 단계에서 배우는 ‘확산’의 개념과 원리를 터득하도록 유도한다. 사물에 대한 적절한 표현과 철자법, 숫자 등을 동시에 배워 자연스럽게 ‘통합학습’도 꾀하고 있다.
“5개월 전 여러분이 제일 좋아하는 프라이드 치킨의 뼈를 코카콜라에 담아놓았지요. 어떻게 됐는지 봅시다.”
학생들은 병아리의 뼈가 흔적도 없이 용해된 용기를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재 중 영재만 모인다는 미국 시카고의 ‘일리노이 수학과학고(IMSA)’ 3학년인 린다 리(17·여)는 과학에 특출한 재능을 가진 대만 출신 이민자 2세대. 이미 로욜라대 등 3개대의 입학 허가서를 받았다. 고교에서 대학수준의 강의를 많이 들어 대학에서 조기졸업이 가능하다.
IMSA의 매주 수요일은 ‘탐사학습의 날’. 자신이 하고 싶은 주제를 골라 대학 등에서 연구 프로젝트를 하는데 25%의 학생이 참여하고 있다. 린다는 시카고의 로욜라대 의료센터에 나가 수전 베이커 박사 밑에서 간염바이러스에 걸린 쥐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이 쥐는 온도에 민감한 ‘ts―F4A’라는 돌연변이인데 바이러스 복제 기능을 막는 돌연변이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 연구 목적.
“처음에는 쥐만 봐도 무서웠는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만질 수 있어요. 대학생들이나 할 수 있는 연구입니다. 의대에 진학해 종양학 전문가가 되고 싶은데 미리 관심 분야를 탐색할 수 있어 너무 좋아요.”
1985년 설립돼 첨단 연구시설를 갖춘 IMSA는 전교생이 660여명으로 해마다 200여명씩 선발한다. 100여개의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고 있고 16학점(과목당 0.5학점)을 이수해야 졸업이 가능하다. 수학 과학 분야를 8학점 이상 공부해야 한다.
교사들은 초호화 멤버다. 평균 15년 이상의 교육경력을 지닌 석사학위 소유자들이다. 이 가운데 35%는 박사급. 교사 1인당 학생수가 9명밖에 안 돼 개별지도가 가능하다.
다인종 국가의 특색을 반영해 입학생 선발도 철저하게 인종, 성비, 사회 경제여건 등에 따라 선발한다. 선발기준도 수학 과학 분야의 관심도, 성적, 교사추천, 시험성적, 에세이, 과외활동 등 매우 다양하다. 현재 백인이 49%로 가장 많고 아시아계 31%, 흑인 10%, 히스패닉 4%, 기타 6% 등이다. 남녀 비율은 50 대 50이며 학생의 거주지역에 따라 64%는 시카고 인근 도시지역, 나머지 36%는 일리노이주의 다른 지역 학생들을 뽑는다.
IMSA 학생들의 학업적성검사(SAT)성적을 보면 1600점 만점에 평균 1391점으로 일반 학생들보다 700점 이상 높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캐서린 빌 교감은 “연간 1600만 달러의 예산을 들여 학생들이 창의적 사고, 문제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고 있다”며 “고교에서 대학 수준의 강의를 듣기 때문에 대학 2, 3학년에 편입하는 학생도 많다”고 말했다.
IMSA와 같은 수학과학고는 미국 전역에 9개가 있는 등 미국은 다양한 영재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국립, 주립, 사립이 있고 수업방식도 전일제 학교, 방과후 학교, 주1회 영재학교, 영재학급, 영재센터 등 갖가지다.
미국의 영재교육은 1세기 전부터 시작됐지만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2년 ‘마랜드보고서’에 특수교육의 하나로 영재교육이 포함되면서부터다. 1988년 영재교육법을 제정돼 주정부 내에 영재교육과를 두고 프로그램 개발과 재정지원을 대폭 확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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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50개주 가운데 32개주가 영재교육을 의무화해 주정부를 중심으로 획일성을 지양한 특색 있는 교육을 하고 있다.
연방정부는 영재 학생들 가운데 소외계층이나 영어에 서툰 학생들을 위해 연간 1000만달러를 배정할 뿐이며 주 정부가 적극적으로 영재교육 예산을 편성해 집행하고 있다.
영재교육에 대한 연구 개발을 전담하는 국립영재교육연구센터(NRCG/T)는 코네티컷대, 버지니아대, 예일대, 뉴욕시립대, 스탠퍼드대와 52개 영재교육센터, 360여개 공사립 학교와 연계돼 현장성을 살린 각종 교육 도구와 방식을 개발보급하고 있다.
▼LA '서드 스트리트校'에서는?▼
“영재교육을 엘리트 교육으로만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특정한 재능을 가진 학생들이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빈곤가정 자녀 등 소외계층에도 기회가 골고루 돌아가야 합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서드 스트리트 초등학교 수지 오 교장은 영재교육 지정학교의 책임자이지만 영재를 ‘특별한’ 아이로 취급해서는 안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이 학교는 3∼5학년 17개 학급 중 10개 학급이 영재학급이다. 전교생 800명 가운데 15%인 120명이 영재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영재라고 생각해 교육하는 것은 아니다.
캘리포니아주는 전체의 상위 3∼5%에 드는 학생을 영재로 보고 있지만 이 학교는 15∼20%로 범위를 확대했다. 더 많은 학생에게 기회를 줘 숨은 재능을 가진 아이들을 ‘놓치지 않겠다’는 취지다.
이 학교는 2학년 2학기에 표준학력고사를 통해 3학년부터 학생들을 영재반과 일반반으로 나눈다. 영재학급이라도 3분의 1은 일반 학생으로 채운다. 교사는 영재성이 있는 학생을 골라 부모의 동의를 거쳐 추천한다. 학교심리학자가 지능지수(IQ)검사를 통해 145점 이상이면 영재로 보지만 IQ에 큰 무게를 두지 않는다. 오교장은 “표준학력고사성적, 학교성적, 작문 등을 종합 평가해 선발한다”며 “특히 작문은 사고수준과 창의력을 금방 알 수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영재교육 연수를 매년 32시간 이상씩 받아야 한다. 그 이상을 요구하는 학교도 있다. 교사뿐만 아니라 교장 학생 학부모도 교육을 받아야 효과가 있기 때문에 수시로 학부모 워크숍을 연다. 비교적 부촌에 있는 데다 교육열이 남다른 유대인과 한국인 학부모가 많아 영재교육에 대한 수요가 많다고 한다.
영재 학생은 학년에 상관없이 속진도 가능하다. 역사시간에 이집트 문화를 배운 뒤 피라미드 등 이집트 건축을 깊이 연구하기도 한다. 학급당 학생수가 20명 정도로 미국에서는 적지 않은 편이지만 교사가 학습목표와 교육성과를 면밀히 체크한다.
최근 미국 학교에서는 독서와 토론수업 열풍이 불고 있다. 인터넷 보급으로 정보가 넘쳐나기 때문에 자료를 걸러내고 내용을 분석하는 능력을 길러줘야 하기 때문이다.
“영재교육은 학습속도, 깊이, 난이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어떻게 내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사가 가르치기보다 과제 중심, 질문 중심으로 스스로 탐구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영재교육을 위한 공식 예산은 학생당 연간 80달러이지만 기초 교육여건이 좋고 교장 재량으로 쓸 수 있는 기부금 성과금 등이 많아 영재교육에 많은 돈을 쓰고 있다.
inchu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