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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브롱크스판 '굿 윌 헌팅'

입력 | 2001-04-03 16:38:00


나이 든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아이들(아이다호)의 방황보다 뭔가를 잔뜩 가지고 있는 아이들의 방황에 관심이 더 많아졌다. 부터 시작된 천재에 대한 관심은 에서 비로소 만개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는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전작인 의 동어반복적인 리메이크이자 브롱크스 판 이다.

두 영화를 대입시킬 이유는 많다. 먼저 두 영화는 한 데 모아 놓고 줄거리를 설명해도 아무 무리가 없을 만큼 흡사한 내용을 지녔다. 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수학천재 헌팅(맷 데이먼)을 램보(로빈 윌리엄스) 선생님이 인정해주었듯 의 문학 천재 자말(롭 브라운)은 은둔하는 작가 윌리엄 포레스터(숀 코너리)를 만나 숨겨진 끼를 찾는다.

물론 두 명의 천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선생님에게 비물질적인 수업료도 톡톡히 치렀다. 그들을 가르쳤던 선생님들 역시 알고 보면 상처로 똘똘 뭉친 캐릭터였고 어린 천재를 통해 그들은 비로소 삶의 황혼기에 아물지 않는 상처를 봉합한다.

내용만 흡사했다면 '리메이크'라는 아주 극단적인 표현까진 쓰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의 캐릭터와 인물 배치는 의 그것과 너무도 닮아있다. 천재를 이해해주는 아주 착한 여자 친구(안나 파킨)와 천재의 재능을 의심하는 인물(F. 머레이 아브라함)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게다가 영화 후반부엔 에서 헌팅을 연기했던 맷 데이먼이 포레스터의 유언을 집행하는 변호사로 잠깐 등장한다. 장난기가 발동한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영화 말미에 의 수학천재 맷 데이먼을 등장시킴으로써 의 태생을 공공연히 밝혔다.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천재의 재능이 수학에서 문학으로 바뀌었다는 점, 멜로적인 코드가 많이 줄었다는 점, 천재에게만 맞춰졌던 포커스가 선생님 쪽으로 약간 중심 이동했다는 점, 영화의 무대가 보스턴에서 뉴욕 브롱크스로 바뀌었다는 점 정도. 이 중 가장 특별한 변화는 단연 인종문제가 절묘하게 개입되었다는 점이다.

의 문학 천재는 흑인이다. 마말레이드 상표 같은 이름을 지닌 자말은 '흑인이기 때문에' 마이클 조던 같은 농구 천재가 되길 꿈꾼다. 흑인으로서 품격 있는 문학가가 되기란 쉽지 않지만 땀내 나는 농구선수가 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자말은 문학적인 재능 이외에 농구 선수의 자질도 충분히 갖췄다. 그런데 자말의 예측대로 백인들은 자말이 농구를 잘 한다는 건 쉽게 인정해줬지만 문학적인 재능까지 갖추고 있다는 건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이런 굵직굵직한 몇 가지 사건을 통해 미국에서 재능 많은 흑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조심스럽게 파고든다. 바로 이점 때문에 보다 훨씬 품격이 높아진 이 영화는 '글을 쓴다는 것'과 '훌륭한 삶을 산다는 것'에 대한 조언까지 아낌없이 퍼붓는다.

"초고는 가슴으로 쓰고 재고는 머리로 쓰라"는 말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 멋진 지침이 될 만하고, "한때 난 실패가 두려워 꿈꾸는 것 자체를 포기했지만 꿈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걸 인생의 겨울에 와서야 알게됐다"는 넋두리는 삶을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조언이 될 만하다.

자기복제의 흔적 때문에 창조력에 대한 비난을 비껴갈 순 없겠지만 는 무기력한 삶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감동적인 삶의 메뉴얼이다. 숀 코너리의 카리스마에 눌리지 않은 연기를 보여준 롭 브라운은 '영화천재'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으며, 훌쩍 커버린 안나 파킨의 성숙함도 보기 좋다.

다만 감독이 '천재'에 대해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가 자신의 천재성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원망 때문이라면 그건 좀 이해가 안 간다. 그는 젊은 시절 충분히 천재대접을 받았으며 이젠 천재를 키워야 할 나이에 도달했으므로.

는 짐짓 부드럽게 삶의 교훈을 이야기하지만 삶에 대한 치열한 냉소도 아낌없이 담고 있는 영화다.

원제 Finding Forrester/감독 구스 반 산트/주연 숀 코너리, 롭 브라운/관람등급 15세 이용가/러닝타임 136분/개봉일 4월28일/홈페이지http://www.spe.sony.com/movies/findingforrester/

황희연benot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