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역사교과서 검인정 심사가 끝났다. 관심의 초점은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신청본에 대한 ‘수정 합격’ 결과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2002학년도 중학교 역사교과서이다. 이 영역에는 종래 7종의 검인정 교과서가 있었다. 이번에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1종을 추가했는데 그것이 국수주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교과서에서 한국과 관련해 문제가 된 것은 크게 뭉뚱그려 대여섯 대목 정도 된다. 고대사에서 임나일본부와 조공 문제, 근대 이후의 강화도사건과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 한국병합 등에 대한 시혜적 해석, 3·1운동 탄압 문제, 간토(關東)대지진 때의 조선인 피해, 강제징용, 일본군위안부 등에 대한 무언급 또는 소극적 서술, 한반도가 일본 안전 보장에는 흉기와 같다는 적대적 표현 등이 그것이다. 이번에 ‘합격’ 판정을 받은 몇 개의 예를 보자. 임나일본부의 경우 노골적으로 한반도 남부를 일본 세력의 거점으로 서술했던 것을 “임나(가라)라는 지역에 거점을 구축한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고쳤다. 임나일본부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문제가 된 3국의 조공 문제에 대해서는 “고구려는 야마토정권에 돌연 접근하고 신라와 백제는 조공을 바쳤다”고 했다. 우리 기준에서 보면 무수정 상태나 마찬가지이다.
근대로 넘어와서는 여러 곳에서 수정의 성의를 보인 듯하나 역시 시늉에 불과하다. 최초 신청본이 워낙 노골적으로 잘못을 범해 웬만큼 고쳐도 역사의 진상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신청본은 조선이 청나라의 허가를 받고 조일수호조규 체결에 나섰다고까지 썼다. 처음 듣는 소리다. 수정 지시를 받고 이를 지운 뒤 일본군함의 무단 측량 시위 행동, 불평등조약 등의 문구를 넣어 침략성을 표했지만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시혜적 위상은 그대로 살아 있다.
한국병합 서술에서 문제가 되었던 부분들, 즉 동아시아 안정과 일본의 안전을 위해 불가피했다든가, 구미 열강 지지와 국제법적 합법성 등은 사라졌다. 그러나 철도와 관개시설 정비 등 개발에 관한 것을 넣어 시혜론에 대한 미련을 남겨 두고 있다.
3·1운동과 대동아공영권에 관한 서술은 많이 수정했다. 공영권 하에서의 일본어 교육, 신사참배 강요 등에 대한 반발, 일본군에 의한 가혹한 노동 징발 등을 서술했다. 그러나 대동아공영권 자체에 대해서는 “아시아 점령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워진 것이라고 비판받았다”고만 해 반성을 회피했다. 그리고 패전 후 피해 국가들에 대한 배상을 실시한 점을 굳이 드러냈다.
문제는 수정 작업이 이렇게 그간 문제가 되었던 것에만 한정된 점이다. 사실 역사서술은 부분적 수정으로 역사상(歷史像)이 바뀌어질 수 없다. 역사관이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모임’의 신청본은 한국과 관련되는 부분 외에 전편에 걸쳐 극도의 국수주의 성향을 보였다. ‘일본의 역사는 세계 4대 문명권 이상으로 유구하며 태초부터 최고(最高) 최고(最古)의 문명국이다, 신화와 천황은 국민 속에 있는 성스러운 존재이다, 일본은 선하고 타국은 악이다’라는 식의 역사관을 바닥에 깔고 있다. 이런 부분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궁금하다.
역사학에 종사해 본 경험으로는 이런 것은 부분 수정으로 도저히 고쳐질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근본적 한계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모임’의 제출본은 처음부터 심사 대상에서 제외되었어야 마땅했다. 이 점에서 특정 부분에 대한 수정 확인만으로 합격 처리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이태진(서울대 교수·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