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부의 시각차▼
지난해 8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모임)이 집필한 교과서의 내용이 일부 알려지면서부터 한일 양국은 신경전을 벌였다. 일본 정부의 검정관여 가능성과 내정간섭 여부, 내용 유출 의혹 등 3가지가 주된 쟁점이었다.
사태의 핵심은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 내용 수정이었지만 양국의 시각차는 부수적인 상황에서도 드러났다. 한일 양국은 3일 공개된 교과서 내용에 대해서도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한국은 ‘일본의 교과서는 국정이 아니고 검정이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일본측의 주장을 불신한다.
일본은 48년부터 교과서 검정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민간출판사에 교과서편찬을 위임해 창의성 있는 교과서를 만들되 혹시 이 과정에서 편향성이 드러날 수 있어 문부과학성에 검정권을 부여한다는 것이 검정제도의 취지다.
한국측의 생각은 다르다. 교과용도서 검정조사심의회가 문부과학상의 자문기관인데다 문부과학상이 최종적으로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이상 정부가 교과서 검정에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국가인정’ 교과서라는 생각이다.
한국이 모임측의 교과서를 비판하고 시정을 요구하자 일본측은 ‘내정간섭’이라는 주장으로 맞섰다. 자민당 문교과학부회가 “나라 안팎의 부당한 요구가 있어도 최후까지 엄정하고 공정한 검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을 정도다.
그러나 박상천(朴相千)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달 15일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문부과학상을 만나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사실은 일본의 역사인 동시에 한국의 역사이기도 하다”며 ‘국제문제설’로 맞섰다.
사카모토 요시카즈(坂本義和)도쿄대 명예교수도 “일본 정치가나 관료의 오직사건을 쓰라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일으킨 전쟁 또는 식민지배로 커다란 피해를 본 사람들이 그런 잘못된 대외정책을 정확하게 쓸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내정간섭’ 주장을 반박했다.
교과서 내용 유출의 쟁점은 누가, 무슨 의도로 이를 공개했느냐는 것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검정이 끝나기 전까지는 교과서 내용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해왔다.
산케이신문은 일본의 일부 언론매체가 한국 중국 등지의 외압을 불러들이기 위해 일부러 유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때 한국을 의심하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모임측 교과서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등은 오히려 사전 분위기 탐지를 위해 문부과학성이나 출판사측에서 의도적으로 흘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일본 내부에서도 검정제도를 폐지하라거나 검정과정을 전면 공개하라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다만 내용이 전혀 알려지지 않아 한국 중국의 반발 없이 검정이 끝났다면 모임측의 교과서가 더 심한 내용을 담은 채 합격했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마치무라 문부과학상은 3일 모임측의 교과서에 대해 “처음에는 상당히 편향됐다고 느꼈으나 수정해서 합격된 것은 상당히 균형이 잡혔다”며 “명백한 잘못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수정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 중국정부가 재수정을 요구해오더라도 응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국측은 고쳤다고는 하지만 자국 중심주의적 사관(史觀)에 입각하여 과거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미화하는 내용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여기고 있어 양국의 시각차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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