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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인터뷰]서태지를 다시 만나다

입력 | 2001-04-05 18:03:00


#1. 뜻밖의 인터뷰

지난 3일 늦은 저녁 양군기획 매니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내일 오후 4시 사무실에서 태지 인터뷰가 잡혔습니다."

지난 해 9월29일 인터뷰 이후 7개월만의 만남이다. 예정에 없지만 반가운 자리가 될 것이었다. 하드코어 핌프록 뮤지션으로 우뚝 선 그의 지금 심경은 어떨까? 치열했던 음악 활동,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인터뷰 당일인 4일. 2월부터 준비한 질문지를 정리했다. 방송사상 처음으로 뮤지션이 공연 장면을 직접 촬영 제작한 사례를 남긴 소감과 11회의 전국투어 라이브 공연, 130만장을 판매한 6집 앨범 등에 대한 질문 리스트를 만들었다. 6집 활동의 파트너인 울트라 마니아와 '보이지만 만날 수 없는' 그를 다룬 매스 미디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했다. '자, 이제 서태지를 만나러 가자!'

#2. 레게 퍼머를 풀었더니 시원해요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군기획 지하 녹음실. 검정색 점퍼, 통큰 바지, 국방색 모자, 핑크색 생머리에 뿔테 안경을 쓴 서태지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레게 머리를 풀었더니 너무 시원하네요"

-근황은?: 2일 라이브 실황 음반 작업을 끝냈다. 재킷도 다 넘어갔고 이제 떠날 준비만 하면 된다. 음악 비디오도 조만간 나오지만 DVD는 2개월 정도 늦게 나올 거다. 음악과 객석 반응을 서라운드 처리할만한 노하우가 국내에는 부족해 미국에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다.

-스트레스는 없었나?: 귀국해서는 뒤를 돌아볼 틈 없이 달려왔다. 그때도 피곤함이나 스트레스는 거의 느끼지 못했다. DVD 작업 같은 새로운 일을 할 때면 너무 재미있다.

#3. 하드코어가 통했다

-그동안의 성과물은?: 가장 큰 것은 '하드코어 음악도 통한다'는 점이다. 록 공연 문화의 가능성을 보았고 TV에 의존하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헤어졌던 팬들과 다시 만나 함께 즐길 수 있던 것도 좋았다.

-서태지였기에 가능했던 성공 아닐까?: 일부 인정한다. 하지만 되지도 않는 음악이었다면 아마 돌팔매질을 당했을 것이다. 세계적인 음악 추세를 반영한 음악이 팬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것에 힘이 난다.

-하드코어를 추구하게 된 계기는?: 예전부터 트래시 메탈과 펑크 음악을 즐겨 들으면서 젊고 힘있고 랩핑이 있는 음악을 만들고자 했다. 2집 '하여가' 때부터 내 음악에 어떻게 록을 가미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3집 '교실 이데아'부터 내 색깔을 가미했다. 힙합, 댄스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지만 언제나 중심은 록이었다. 하드코어도 그 맥락이다.

#4. '탱크'가 제일 좋다

-처음엔 '울트라맨이야'가, 요즘은 '대경성'이 좋다:'대경성'은 우리 마니아들이 좋아한다. 그래서 공연 때 인트로로 부르기도 했다.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내가 만든 노래니까 다 마음에 들지만 그래도 '탱크'가 제일 애착이 간다.

♬ 노래듣기

  - 탱크

-왜 라이브 앨범에 사진을 넣지 않았나:현장 사진은 너무 평범하다. 그래서 추상적이거나 그래픽을 이용한 그림을 넣게 됐다. 무언가 메시지를 담은 그림을 통해 여운을 남기고 싶어 다양한 이미지를 생각한 것이다.

-외국 음악 웹진의 호평을 어떻게 생각하나?: 팬들의 도움으로 일궈낸 성과여서 고맙게 생각한다. 미국에 진출하게 되면 좋은 자료가 될 것 같다.

#5. 방송사, 뮤지션을 믿었다

-뮤지션이 자체 제작한 프로그램을 방송사가 방영했는데: 처음 시도하는 것이어서 방송사를 설득하는 것이 어려웠다. 처음에는 어림 없을 것 같았는데 결국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 앵콜 콘서트 실황은 3억원을 받고 판권을 넘겼다. 앞으로 뮤지션들이 좋은 품질의 영상과 사운드를 납품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정상이다.

-힘들지 않았나?: 자체 제작을 하는 동안은 정신이 없었다. 무대를 설치하고 음향과 조명을 점검하고 공연을 연 뒤 믹싱 편집 작업을 하다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완벽주의자 같은데: 한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다. 다른 사람이 해주는 일이 성에 안차니까 내가 나서는 거다.

-하드코어 핌프록은 '밴드의 음악'인데 혼자 다 했다. 앞으로도?: 마음에 맞고 내 음악을 소화할 수 있는 연주자가 있다면 그룹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느낌이 맞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혼자서도 열심히 만들면 좋은 음악이 나온다고 믿는다.

#6. 마니아를 얻었다?

-대중을 잃었다는 평가는?: 예전에 아줌마, 아저씨들까지 좋아해 주셨다. 그러나 이번엔 대중성을 포기했다. 외국에서도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가수는 없다. 그건 기형적인 거다. 누구나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싶지 않다.

-울트라 마니아는 태지에게 무엇인가?: 확고한 지지자들이고 나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 10년 가까이 활동하면서 10대 고교생은 물론 40대 교수까지 넓은 마니아들이 생겼다. 내 음악을 사랑해주고 분석하고 토론하는 것이 자랑스럽다.

-'안티 서태지'를 외치는 인디 밴드들이 있다: 언급하기 싫다. 별다른 생각이 없다.

-서태지에 대한 보도를 어떻게 생각하나?: 뮤지션의 음악보다 개인 일상이나 가십거리를 다루는 게 아쉽다. 차라리 표절 시비라도 기사화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다. 내 음악을 제대로 평가받고 싶다. '글레이 합동 공연' '황사 방지 한중일 공연' 등에 관한 것은 구체적으로 제안받은 적이 없다.

#7. '태지의 화' 전국 투어에 만족한다

서태지는 11회에 걸친 전국 투어를 "수준 높은 콘서트였고 공연을 즐기는 문화를 만들었다"고 자평했다. 몸으로 부딪치는 슬램과 스탠딩 콘서트의 즐거움을 팬들과 체험한 것이 큰 수확이었다는 것이다.

24억원을 투입한 이 공연에서 'V 독스'라는 최첨단 음향 시스템으로 공연장의 최고음을 측정했고 관객들의 환호와 공연의 생생한 음을 융화할 수 있었다.

-컴백쇼와 앵콜 공연의 차이는?: 컴백쇼 때 많은 팬들이 스탠딩 공연을 난감해 했다. 하지만 앵콜 콘서트를 할 때 관객들은 달랐다. 머리를 흔들고 몸을 부딪치며 공연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 음악팬을 넘어섰다고 느꼈다. 가수와 함께 즐기는 팬들의 눈빛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1집부터 6집을 아우른 콘서트였는데: 예전에 발표했던 곡들을 요즘 느낌대로 바꾸어 구성하다보니 그렇게 됐다. 제일 즐거웠던 장면? 치킨 댄스를 선보이며 "One More Time!"을 외쳤던 '록앤롤 댄스'가 재미있었다. 1집에 수록했던 이 노래는 '시나위' 시절부터 생각했던 슬램을 꿈꾸며 만들었는데 멋지게 보여준 것 같다.

#8. 괴기스런 무대, 상징을 담았다

- 'ㄱ 나니'를 부를 때 영상과 무대가 괴기스러웠다: 의붓 아버지가 딸을 상습적으로 폭행하는 상황을 설정한 것이다. 그 설정에는 여러 상징이 담겨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로 볼 수도 있고. 다양하게 상상할 수 있다. 악마상과 박쥐의 날개 같은 무대 장치는 누군가를 괴롭히면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표현한 것이다.

-공연의 어려움은?: 우리나라에는 콘서트 전문가가 없다. 조명, 음향 분야에 크리에이티브 정신을 가진 인물이 적어서 결국 혼자 해결해야만 했다. 앞으로 전문 스테프를 양성하는 데도 신경을 쓸 생각이다.

#9. 인디 밴드, 그 무서운 가능성

-'태지의 화'에 참여한 인디 밴드들을 평한다면: '레이니썬', '디아블로' 등 함께 했던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은 모두가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실력이 뛰어나다. 앞으로 가요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뮤지션이라고 생각한다.

-전국 투어에서 서태지 밴드는 환상적인 연주와 무대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그들의 미래는:일단 6집을 위한 프로젝트 밴드여서 계속 유지할지는 미지수다. 비주얼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최고의 무대를 꾸며준 멤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10. 일본이 부른다

-일본 진출은?: 예정대로라면 6~7월경이 될 것이다. 신곡은 만들지 않는다. 어차피 일본에서 내 노래는 다 신곡 아닌가. 일본어로는 부르지 않을 작정이다. 발음상 한국어로 된 노래를 바꾼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음악 관계자들이 '울트라 매니아'를 좋게 평가한 만큼 미국에 가서 일본 활동에 대한 준비를 할 생각이다. 자세한 내용은 밝히기 곤란하다.

서태지는 일본 활동과 관련해 말을 아꼈다. 계약 조건 등 세부사항에 대해 노코멘트로 일관했는데 신중하고 철저하게 준비하겠다는 의도로 보였다. 다만 지난 2월 중순 음반 및 활동과 관련해 정식 계약을 맺었고 현지 인기 가수 수준의 파격적인 대우를 받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1. 서른살, 잔치는 시작됐다

-이제 30세가 됐다: 좋은 나이다. 시간이 흘러갔지만 변한 것은 없다. 더 좋은 음악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과 즐기며 살고 싶다.

-게임은 자주 하나?: 좋아하지만 하지 않으려 애쓴다. 일단 시작하면 너무 빠져들기 때문이다.

-정현철과 서태지를 말한다면?: 나는 정현철이다. 무대 위의 서태지는 내가 조종하는 또 다른 나다.

#12. 7집은 1~2년 뒤에 나온다

-음반사 '괴수대백과 사전'은 어떻게 되나?: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다른 가수의 음반도 낼 수 있다. 내가 제작하는 건 아니다. 뮤지션이 만든 음악을 그대로 보여주는 창구 역할을 하게 된다.

-7집은 언제?: 아마 1~2년은 걸리겠지. 어떤 음악이 될지는, 글쎄.

-언제 미국으로 떠나나:되도록이면 빨리 가겠다. 이제는 음악 작업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가는 것이다. 자주 한국에 오겠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0811 사서함에 육성을 남기겠다. 정기적으로 사서함을 통해 근황을 전할 것이다.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한마디로 멋있다. 얘기를 하지 않아도 믿음이 간다. 무언가 두터워지고 보이지 않는 끈이 연결된 것 같다. 대중음악 발전을 위한 사회적인 참여가 다소 우려가 되긴 해도 긍정적이라고 본다.

-이번 인터뷰의 제목을 지어보라:반말로 해도 되는가.'즐거웠냐? 기다려라. 곧 온다. 커밍 쑨. 태지.'

#13. 가시밭길을 가겠다

인터뷰는 이렇게 끝났다. 그는 북한 어린이를 돕는 '어깨동무' 활동에 대해 "그냥 모른척 해달라"고 했다. "좋은 일은 남모르게 하는 것 아니예요?"라고. 작별의 악수를 나눌 때 그의 고교 자퇴서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나는 아무도 가지 않았던 고통의 가시밭길을 선택한다."

황태훈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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