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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교과서 파문 확산]"한일관계 금갈라" 속앓이만

입력 | 2001-04-05 18:48:00

경찰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일본대사관이 입주한 교보빌딩 앞을 경비하고있다


한승수(韓昇洙)외교통상부장관은 5일 저녁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공로명(孔魯明)전 외무부장관, 이어령(李御寧)전 문화부장관, 김태지(金太智)전 주일대사 등 일본관계 전문가 7명과 만찬을 겸한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다.

정부 나름대로 건설적이고 유용한 대응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 만든 간담회였겠지만 국민적 분노에 비춰보면 너무 느슨한 대응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생각은 무엇이며 적절한 대책은 과연 없는 것일까.

당국자들은 “교과서 문제처럼 감정적인 사안일수록 합리적이고 신중하게 대처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한 당국자는 “여론에 밀려 어떤 조치를 취했는데 그 조치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경우 그 이후 사태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야말로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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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외교적 조치는 상대방에게 의도한 만큼의 충격을 줄 수 있어야 효과가 있는데 한일관계의 구조상 그것이 힘들다는 것이다. 양국간 한해 관광객만 300만명이 넘고 지난해 무역규모가 520억달러에 달하는 등 양국이 밀접한 관계여서 정부가 이 문제를 다른 외교 현안들과 포괄적으로 연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는 일부 언론이 제기하고 있는 △추가 문화개방 중단 △천황 호칭 폐지 등에 대해서도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해 우리 스스로 결정한 사안들을 철회하는 게 일본측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마땅한 대응책은 전혀 없는 것일까.

정부는 교과서에 대한 정밀 검토가 끝나는 대로 일본측에 어떤 형식으로든 재수정을 요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개별 역사적 사안 하나 하나에 대한 요구가 될지 아니면 포괄적인 촉구가 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덕민(尹德敏)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왜곡된 교과서들을 일본 중학생들이 보지 않도록 하는 한일 양국의 다양한 움직임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 북한과의 공동 대응이 일본을 자극할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과서 문제에 국한해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공동보조를 맞추는 것은 고려해볼 만한 외교적 카드”라고 말했다.

bookum90@donga.com

▼한국"유감" 중국"분개"▼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한 한국과 중국 정부의 대응은 얼핏 보기에도 크게 차이가 난다. 일본 역사교과서 검정 결과가 나온 3일 동시에 발표된 한국 외교통상부 대변인 성명과 중국 외교부 성명을 비교하면 정부가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혀 놓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는 인상이 짙다.

먼저 교과서 왜곡에 대한 평가부터 사뭇 다르다. 정부는 ‘일부 교과서가 자국 중심주의적 사관에 입각해 과거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미화했다’고만 지적했다. 그러나 중국은 이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정부는 역사교과서 문제를 한일간의 양자적 사안에 국한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반역사적, 반인류적, 반지역적 사태로 규정하고 있다. 정부 성명은 ‘일본 자신뿐만 아니라 한일관계의 발전에도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고만 밝혔다. 그러나 중국은 ‘역사적 사실과 인류의 양심에 대한 도전이며 모든 피해국 국민의 감정을 모욕한 것’이라고 극단적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일본 정부의 책임론에 대해서도 양국은 근본적으로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역사왜곡을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라’고 촉구해 항의보다는 재발 방지에 무게를 두는 듯한 미지근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중국은 ‘일본 정부가 문제의 교과서가 출판되도록 방치함으로써 마땅히 져야할 책임을 회피했다’고 ‘일본정부 책임’을 부각시켰다.

대응방법에 있어서도 정부는 ‘교과서 검정 결과를 면밀히 검토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소극적 자세를 보인 반면 중국은 ‘일본 정부가 우익교과서의 잘못을 바로잡는 실제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몰아세웠다.

bookum90@donga.com

▼장쩌민"공동대응" DJ"각자 얘기하자"▼

중국 장쩌민(江澤民)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15일 브루나이에서 열린 아시아 태평양경제협력체(APEC)회의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을 때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해 공동대응을 제의했으나 김대통령이 이를 거절했다고 5일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장 국가주석은 북한 문제를 주로 논의한 이날 회담이 끝나기 직전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는 그냥 넘길 수 없다. 중국과 한국이 공동대응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는 것. 이에 대해 김대통령은 “역사 왜곡은 확실히 잘못된 것으로 중국과 인식을 같이한다”이라고 동의한 뒤 “그러나 한일간 문제는 두 나라가 얘기하는 것이 옳다. 중국과 공동대응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며 공동대응을 거절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신문은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과 보조를 같이하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개별 대응한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방침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청와대는 5일 “APEC회의 기간 중 장쩌민 주석과 그같은 논의를 한 사실이 없다”고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