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항상 ‘진지한 배우’라는 말이 모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배우는 생계를 위해 자기가 아닌 사람을 흉내 냅니다. 때론 거짓말도 하지요. 아마 ‘진지한 거짓말쟁이’라고 할 수는 있겠죠.” 할리우드에 있는 한 호텔의 꼭대기 층 발코니에서 조니 뎁은 손으로 만 담배를 입에 물고 시내의 휘황찬란한 야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배우라는 말을 쓴다면 ‘코믹 배우’라는 말이 더 그럴 듯합니다. 모든 희극은 비극에 바탕을 두기 때문이죠. 끔찍한 일들이 있기 때문에 웃기는 일도 있는 겁니다.”
지금까지 출연했던 20여편의 영화에서 뎁은 진지한 것과 희극적인 것을 아울렀다. 별나고 엉뚱한 역할을 좋아하는 데다 전통적인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 역할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성격. 덕분에 37세의 나이에 또래 연기자들 중 가장 모험을 좋아하는 배우로 자리잡았다.
곧 개봉될 영화 ‘블로(Blow)’에서 뎁이 연기한 1970년대의 마약계 거물 조지 정은 진지하면서도 코믹한 그의 연기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이다. 다른 배우가 이 역을 맡았다면 정은 불쌍한 광대나 혐오스러운 악마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뎁은 너무나 자극적인 달콤함을 보여주고 있다.
뎁은 1990년에 ‘크라이 베이비(Cry Baby)’에 출연했다. 당시 감독 존 워터스는 뎁을 “훌륭한 배우면서 스타로 성장한 극히 보기 드문 사람”이라며 “그가 다음에는 또 어떤 ‘이상한’ 역할을 맡을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뎁은 스타덤과 상업적 성공을 철저하게 경멸하죠. 그는 80세가 되어서도 관객들에게 놀라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로 남을 겁니다.”
한때 여학생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뎁의 얼굴은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고 아름답다. 다음달 개봉 예정인 ‘울음을 터뜨린 남자(The Man Who Cried)’에서 뎁과 공연했던 존 터투로는 지난해 뎁이 여장 남자로 출연했던 영화 ‘밤이 오기 전에(Before Night Falls)’를 꼽는다. ‘와! 저 친구 정말 미인이잖아. 러브신에서 저 친구 상대역을 해도 괜찮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할 정도.
그러나 뎁은 자신의 외모가 자산인 동시에 장애물이라고 여긴다. 때로는 외모가 그의 재능을 가려 버리기 때문이다.
‘길버트 그레이프 (What’s Eating Gilbert Grape)’와 ‘초콜릿(Chocolat)’의 라세 할스트롬 감독은 뎁의 ‘자연스러움’을 높이 평가한다. 뎁은 영화 ‘블로’에서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지치고 겁에 질려 있으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 정의 눈빛 속에는 지나친 화려함도 진부한 과장도 들어 있지 않다. 정이 처음으로 코카인을 들고 세관을 통과하는 장면에서 뎁은 너무나 교묘하게 관객들을 공범으로 만들어 버린다.
뎁은 정을 비롯해서 자신이 연기한 인물들을 ‘망가진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자기자신 역시 ‘망가진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영화배우가 되고 스타가 된 후에도 한참 동안 집도 주소도 갖지 않았다.
켄터키주에서 태어난 뎁은 15세가 될 때까지 30번이나 이사를 다녔다. 따라서 친구들과 지속적인 우정을 키울 기회도 거의 없었다. 그는 “내가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인사이더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뎁은 몇 년 전 프랑스로 이주했다. 예술에 무관심한 할리우드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프랑스 가수 바네사 파라디스, 22개월 된 딸과 함께 파리에서 살면서 남부에 작은 농장 하나를 사들였다.
“우리 농장은 극장이 하나도 없는 작은 마을에 있습니다. 동네 술집에 앉아서 극장 흥행성적 대신 내일 비가 올 건지를 놓고 얘기를 나누는 게 좋습니다.”
뎁은 한때 기분 내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자기를 쫓아다니는 파파라치들에게 덤벼들고, 호텔 방의 기물을 마구 부숴 경찰에 체포되고, 수많은 여배우들과 염문을 뿌렸다. 그러나 지금 그는 애인 파라디스와 딸 릴리 로즈에 대해 마치 초콜릿 푸딩처럼 부드럽고 매혹적인 목소리로 너무나 즐겁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http://www.nytimes.com/2001/04/01/arts/01LIDZ.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