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는 1991년 걸프전 종전 이후 유엔의 경제제재 조치 때문에 경제가 바닥에 떨어지는 고통을 겪는 외에 사회 문화적으로도 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었다.
전쟁 전 이라크는 중동에서도 가장 개방적이고 세속적인 나라 중 하나였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젊은 남녀가 짝을 지어 술을 마실 수 있었고 나이트클럽에 손님이 넘치는 것은 물론 매춘도 공공연히 이뤄졌다. 요르단 등 인근 국가 사람들이 이라크의 개방 문화를 즐기기 위해 국경을 넘어 원정을 오기까지 했다. 특히 쿠웨이트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남부 항구도시 바스라에는 주말만 되면 술과 노래 춤 등 환락을 즐기려고 넘어온 쿠웨이트 부자들로 북적댔다. 이라크의 개방적인 문화는 양떼를 몰고 초목을 찾아다니던 인근 유목국가들과는 달리 오래 전부터 농업을 토대로 정착촌을 이루며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이라크의 생활상은 수년 전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지시한 ‘종교개혁’으로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공공 장소에서의 음주가 전면 금지됐고 일부 특급호텔 네 다섯 군데를 제외한 모든 나이트클럽이 폐쇄됐다. 외국 방문객들 때문에 나이트클럽을 유지하고 있는 호텔에서도 술은 팔지 않는다. 출입도 남녀가 쌍을 이룬 경우에만 가능하다. 나이트클럽 내에서 파트너를 구하는 ‘성적인 문란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심지어 남녀가 함께 수영장에 출입하는 것조차 금지됐다. 바그다드대의 한 여대생은 “수영장마다 일주일에 하루를 여자들이 출입할 수 있는 날로 정해 운영한다”면서도 “정부의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지만 수영장에 가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초중고교의 종교 교육도 크게 강화됐고 TV는 이슬람 휴일인 금요일이면 이슬람 사원의 기도 장면을 하루종일 생방송했다.
현재 바그다드 한복판에 있는 국내선 전용 공항 자리에는 세계 최대의 사원 건립 공사가 한창이다. 국민은 굶주리고 있는데 사원 건립에 막대한 돈을 허비한다는 외국의 비난을 막기 위해서인지 공사장에는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다.
최근에는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가 걸프전과 유엔 제재에 따른 경제난으로 중단됐던 문화재 보존작업도 재개됐다.
후세인 대통령이 종교개혁에 심혈을 쏟고 있는 것은 물론 이라크에 대한 인근 중동 국가들의 지지를 확보하는 동시에 이라크 국민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한 것이다.걸프전 이전에는 몇몇 이슬람 국가들이 이라크가 너무 세속적이라며 적대시하기도 했다. 후세인 정권은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세계의 제재에 맞서기 위해서는 이슬람권의 폭넓은 지지가 절대적이라는 인식 아래 그 돌파구를 종교개혁에서 찾고 있는 셈이다.
종교계와 보수파는 후세인 정권의 종교개혁을 크게 반기고 있다. 이만 카몰 바그다드대 이슬람학과장은 “방만했던 사회 분위기를 후세인 대통령이 바로잡고 있다”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종교개혁은 종교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국민의 사고방식까지도 바꾸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반 국민 사이에서는 반발도 만만치 않다. 영어 번역문학가인 샤미르(48)는 “사회가 후퇴하고 있는 느낌”이라며 “종교개혁은 국민의 삶을 점점 부자연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후세인 정권은 그동안 석유라는 국부(國富)와 정보, 언론 등 3가지를 독점해 이를 정권 유지 수단으로 이용해왔으나 최근 억압적인 정책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조금씩 탄압의 강도를 늦추고 있다.
최근 만들어진 인터넷 센터가 대표적인 경우. 외국 정보 차단을 위해 위성방송 수신을 엄격하게 금지하던 이라크 정부로서는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인터넷 센터는 바그다드에 4군데, 바스라에 1군데가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이라크인들은 2달러 정도를 내면 1시간 동안 메일 송수신이나 인터넷 서핑을 할 수 있다. 지난해 8월 문을 연 이라크 인터넷 센터 1호점의 와다 라시드 지배인(29)은 “2층 건물에 펜티엄 Ⅲ 컴퓨터 25대를 갖추고 있다”며 “하루 100명 정도가 찾아오는데 오후 1시 이후에는 한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만난 컴퓨터 프로그래머 후삼 알 살라(23)는 일주일에 2, 3차례 인터넷 센터에 와 한두시간씩 이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로 미국의 소프트웨어 회사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업계 동향을 파악하거나 무료 소프트웨어를 다운받아 집에 있는 펜티엄급 컴퓨터에 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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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먼 나라' 이라크▼
한국인에게 이라크는 ‘멀고도 먼 나라’였다. 비행기로 12시간이면 갈 수 있는 유럽보다도 거리로는 훨씬 가깝지만 3일 밤낮을 날고 달려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유엔의 비행금지 조치 때문에 이라크로 통하는 여객기의 운항이 모두 중단됐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요르단 암만에 도착해 가장 먼저 부닥친 장애물은 비자발급 문제였다. 일본주재 이라크 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한 뒤 두달 동안 취재계획서, 이력서, 재직증명서 등 까다롭게 요구해오는 서류를 제출해 어렵게 비자 발급약속을 받았지만 요르단주재 이라크 대사관 관리는 “들은 바 없다”며 몸을 돌렸다. 영어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창구 직원에게 3시간 동안 사정을 하고 나서야 간신히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험난한 이라크 입국길의 백미(白眉)는 12시간 동안 지프택시를 타고 암만에서 바그다드로 가는 길이었다. 시외버스가 있기는 하지만 일주일에 두 차례 정도밖에 운행하지 않아 일정을 맞추기 힘든 데다 그나마 운행이 취소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암만∼바그다드를 오가며 택시영업을 하는 지프가 1000대를 넘는다고 한다.
지프택시를 이용하려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지프는 태양이 이글거리는 열사의 사막을 지나는 고속도로를 시속 140∼150㎞로 쉬지 않고 달렸다. 이따금 운전사가 졸기도 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굽은 길이 보일 때면 운전사가 졸고 있지나 않은지 눈치를 살펴야 했다. 야간에는 도로 위에 방치된 동물의 시체나 타이어 조각을 피하지 못해 차가 전복되는 사고도 잦다고 한다.
이라크 입국장에서 만난 한 프랑스인은 “바그다드에서 사업을 하고 있어 한달에 서너 차례 택시로 국경을 넘는다”며 “하루빨리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