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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희망이다]중국의 영재교육

입력 | 2001-04-08 21:26:00


1978년 중국 장시(江西)성의 한 대학강사가 정부에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우리 지역에 꼬마 천재가 있는데 대학 공부를 시켜도 괜찮겠느냐’는 문의가 담겨 있었다. 교육부 관계자가 급히 장시성에 가보니 어린 천재가 많아 안후이(安徽)성에 있는 중국과학기술대에 아예 ‘소년대학생반’을 만들었다. 이것이 78년 당시 중국과학기술대에서 소년대학생반을 지도했던 허수만(賀淑曼)교수가 밝힌 중국 영재교육(중국에서는 차오창·超常교육으로 부른다)의 시초다.

이후 13개 대학에서 소년대학생반을 설치하는 등 대학 중심으로 이뤄지던 영재교육은 최근 중학교와 소학교(초등학교) 위주로 변화하는 추세다. 수도인 베이징(北京)에서는 베이징제8중학교 런민(人民)대부속중학교 위민(育民)소학교 인허(銀河)소학교 등 4곳에서 영재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2개반(총 64명)의 영재학급을 20년째 운영중인 베이징제8중학교는 중국 내에서 모범적인 영재교육기관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베이징 시청(西城)구 안위안후(按阮胡)동 제8중학교 ‘소년1반’의 수학수업시간.

▼글 싣는 순서▼


  -1부 영재교육-

1. 미국
2. 싱가포르
3. 호주
4. 중국
5. 이스라엘
6. 한국

“자, 이 지수함수의 그래프를 한번 그려볼까.” 왕춘후이 교사(28)가 칠판에 지수함수 수식을 적으면서 그래프를 그려보라고 주문했다. 학생들은 저마다 공책 크기의 중형계산기를 두 손으로 맞잡고 게임하듯 두들겨 댔다.

“제가 그렸어요.” 가장 먼저 샤오위안(12)이 손을 치켜들면서 외쳤다. 여기저기 뒤이어 학생들이 손을 치켜드는 가운데 샤오군의 계산기를 들여다보던 왕교사가 “그렇지. 좋았어”라고 칭찬한 뒤 지수함수에 대해 설명했다. “애들이 직접 그리고 설명하게 만들면 경쟁심을 갖고 열심히 해 수업효과가 훨씬 높다”는 게 왕교사의 설명.

1년반 정도 영재교육을 받으면서 중학과정을 마치고 최근 고교과정을 시작한 ‘소년1반’ 학생들은 놀이하듯 자유롭게 진행되는 수업을 통해 동년배 친구들보다 이미 3년 이상 앞서 배우고 있었다. 또 3년반 동안 영재교육을 받으면서 현재 고교과정을 거의 끝마친 소년2반은 7월 치러질 대학입학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제8중학교 영재교육 책임교사인 자오다이헝(趙大恒·55)은 “보통 소학교 4, 5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2년마다 1개반 30여명씩을 선발해 고교 졸업까지 8년 과정을 4년에 가르치고 있다”면서 “교과 진도를 빠르게 진행하는 것에는 별 문제가 없으며 학교에서는 협동심과 도덕적 소질, 고난을 극복하는 용기 등을 가르치기 위해 체육을 중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영재 선발과정에서 문화적 차이를 고려해 지능지수(IQ)검사 등 외국의 평가기준은 배제하고 중국과학원심리연구소에서 개발한 다양한 시험자료를 활용하고 있다. 특히 △주의력 △관찰력 △기억력 △상상력 △사유능력 등 5가지 지표를 중심으로 평가하고 있다.

3단계 평가를 통해 영재학생을 선발하는 제8중학교의 경우 1단계로 소학교 1∼4년의 학습실력 검증시험과 심리학자가 출제한 인식능력 고찰시험을 치른 뒤 2단계에서 어문과 수학의 응용능력 측정시험과 심리검사를 더 심도 있게 치른다. 마지막으로 1주일간 야영생활을 하면서 수업 자습 토론 체육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최종 합격자를 가린다.

한때 7.5세에 선발해 12세에 대학에 가게 하는 등 영재교육의 대상 연령을 낮춰가던 추세는 최근 지나치게 어리면 스스로 자기를 돌보고 생활을 꾸려가는 데 문제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영재교육 시작 연령이 10, 11세로 조정되고 있다.

또 주로 이공분야에 치우쳤던 영재교육은 어문과 예술 등 여러 분야로 다양화하는 추세다. 런민대부속중학의 경우 최근 축구영재반 음악영재반 수학영재반 등으로 영재학급의 구성을 다양화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영재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찬반 논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반대론자들은 소학교에서 뛰어난 학생들을 뽑아 따로 공부시키면 남은 학생들은 열의가 없어지고 실력도 더 떨어진다거나 속도가 빠른 영재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스트레스가 많고 심한 경우 자살충동까지 느낀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3년 전 후난(湖南)성 부주석이 전국인민대회장에서 ‘평등한 교육이념’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영재교육을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전단을 뿌린 일도 있었다.

이 같은 반대론은 영재교육을 옹호하는 대세에 밀려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학부모들과 옹호론자들은 중국의 교육방향과 영재교육은 모순이 없고 오히려 영재교육은 높은 차원의 소질교육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정부도 표면적으로 영재교육에 대한 구체적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지만 국가 전략사업으로 삼고 집중 육성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우선 인구억제정책과 함께 한자녀 갖기 운동을 벌이면서 학부모들이 대부분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망자성룡(望子成龍)’의 바람을 갖고 있는 데다 미국 등 서구 선진국들이 영재교육을 통해 인재육성에 앞서 나가고 있다는 판단하에 따른 것. 중국 영재교육연구회 관계자는 “영재교육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법령 마련을 건의했으며 교육부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dal@donga.com

◇베이징 8중학교 천샤오인 인터뷰

“학교에서 경시대회 나가서 상 받는 걸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거든요. 가끔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분야의 대회에 나가는 경우가 있을 뿐입니다.”

베이징(北京) 제8중학교 소년2반의 천샤오인(14)은 지난해 미국에서 열린 생물과학경시대회에 중국 대표로 참가해 병균에 대한 실험을 통해 입상한 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친구 몇 명이 최근 베이징수학경시대회에 참가해서 1∼3등을 모두 휩쓸기도 했지만 따로 경시대회를 위해 준비하지 않으며 학교에서도 경시대회 참가를 강권하는 일은 없다고 설명했다.

7월 치를 대학입학시험 준비 때문에 다소 바빠졌다는 천군. 그러나 앞으로의 진로를 묻자 “칭화(淸華)대에 진학해 생화학을 전공한 뒤 미국 하버드대학원에 가서 계속 공부할 계획”이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시험을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천군의 얼굴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4세 때부터 시작한 피아노 연주를 좋아해 틈만 나면 음악을 즐긴다는 천군은 인상적이었던 수업을 묻자 “환경보호 교육을 위해 기차로 이틀 가량 걸리는 낙후된 지방에 가서 나무심기를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천군에게 영어공부의 비결을 묻자 “친구들과 열심히 영어로 떠들다 보면 영어를 빨리 익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dal@donga.com

◇中 인재연구회 허수만 부이사장 인터뷰

“중국과학기술대 소년대학생반에는 장강(長江)에 인접한 장쑤(江蘇)성과 장시(江西)성 출신이 많았어요.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많은 곳이라 ‘맑은 물에 사는 물고기를 많이 먹으면 똑똑해진다’는 주장이 제법 설득력이 있었죠.”

중국 인재연구회 부이사장인 허수만(賀淑曼·60·여)베이징공업대교수는 “세계적으로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거듭하고 있지만 아직 ‘영재’를 어떻게 구별하는지, ‘영재’들은 왜 뛰어난지에 대해 확신할만한 해답을 찾기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도 ‘혈액 속에 비타민C 함량이 많을수록 똑똑하다’ ‘아연(Zn) 함량이 중요한 변수다’ ‘영재는 두뇌의 구성 자체가 다르다’ 는 등의 학설이 제기됐었고 심지어 손금과 발금으로 구별이 가능하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는 것.

또 80년 8월 한 대학이 개발한 뇌주파 관측장치를 이용해 ‘808신경유형측시’로 이름붙인 신경검사를 일부 학교에서 영재학생 선발시 참고자료로 활용하기도 한다.

허교수는 “소년대학생반 출신 영재들은 90% 이상 미국에서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학기술대에서 소년대학생반을 지도할 때 17세로 ‘늦게’ 들어온 한 여학생이 있었는데 2등을 워낙 큰 차이로 앞지르며 늘 1등을 했다. 반장을 하는 것은 물론 연애까지 하면서도 성적이 탁월했고 밤에 촛불을 켜놓고 늦게까지 공부하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 동료 학생들을 깨워줄 정도로 열성이었다는 것.

“미국 MIT에서 24세에 박사학위를 받을 때 축하하러 갔더니 ‘노벨상을 목표로 계속 물리학 이론을 공부하겠다’고 말해 뿌듯했다”고 밝힌 허교수는 “앞으로 10∼20년 뒤 중국의 영재들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허교수가 특히 관심을 쏟는 부분은 영재들의 심리분석과 사회화교육. 그는 지난해 제6회아태지역 영재학회에서 ‘소년대학생의 사회화와 개성발전’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16개 항목에 걸쳐 개성인소를 비교한 결과 영재학생은 우수한 일반 대학생들에 비해 과감함과 창의력 총명함 등 8개 항목이 앞섰지만 친화력과 상상력 등 7개 항목이 뒤지고 강직함은 똑같게 나타났다.

그는 “소년대학생의 개성발전은 지극히 정상적이며 전통적 교육체제가 빨리 변해야 한다”면서 “어린 영재들에게 인성 함양을 위한 다양한 사회화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허교수는 “영재교육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있어 문제”라며 “중국 인재학회 차원에서 대만 전문가와 함께 교사지도용 영재교육 교재를 편찬하는 한편 교사 인증서를 발급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dal@donga.com